6.25전쟁 전후 영덕군에서의 민간인 학살
Civilian massacre in Yeongdeok-gun in the period immediately preceding and following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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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60년 제4대 국회의 조사에 의하면 6.25전쟁 전후 시기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약 5,082명의 민간인이 학살되었는데, 영덕군에서는 도내에서 가장 많은 피해가 발행하여 574명(전체 피해자의 11.3%)이 희생되었다. 2009년 필자가 이끈 연구팀의 조사 결과 제4대 국회에서 집계한 피해자 수의 약 2배에 달하는 1,093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덕군은 1읍 8면 117개의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15개 리를 제외한 102개 리에서 피해가 발생하였다. 절대 다수의 지역에서 주민들이 전쟁 피해를 입은 것이다. 영덕읍 같이 도시화가 진전된 지역은 피해가 적었던 반면, 산지가 많은 북부 지역에서는 피해가 컸다. 피해자의 성별은 남자가 대부분이었다. 연령대별로는 20대와 30대가 74퍼센트를 차지하였다. 피해자의 직업은 1,016명이 농업으로 나타났다. 시기적으로 전쟁 전해인 1949년과 전쟁 발발 해인 1950년에 피해가 집중되었다. 사건유형별로 보면 군경토벌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으며, 그 다음이 보도연맹사건의 피해자였다. 피해 원인으로는 총살이 772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Abstract
According to a 1960 probe by the fourth National Assembly, about 5,082 civilians were slaughtered in the Daegu-Gyeongbuk region in the period immediately preceding and following the Korean War. 574 of the victims (11.3% of the total) perished in Yeongdeok-gun, making it the most affected area in the Gyeongbuk province. Upon further investigation in 2009, my research team ascertained that the true figure of civilian casualties in Yeongdeok-gun was 1,093, approximately twice the original estimate by the National Assembly. Yeongdeok-gun is comprised of 1 eup, 8 myeons, and 117 lis. An absolute majority of the townships were ravaged by the war, as residents were slain in 102 of the 117 lis. Within Yeongdeok-gun, urbanized pockets such as Yeongdeok-eup endured relatively little damage, but the more mountainous northern portion sustained heavy casualties. Most of those massacred were male and in their twenties or thirties; 1,016 of the victims had held agricultural occupations. Temporally, the civilian casualties were concentrated in 1949 and 1950, the year before the outbreak of the conflict and the year of. The two most prominent types of casualties were those effected by the military and police and then those related to the Gukmin Bodo Yeonmaeng incident. 772 of the victims, a plurality, were shot to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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