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엽 沙斤道 소속 驛人의 직역과 신분
The Jikyeok(職役) and Status of Station Workers at Sageundo in the Mid-18th Century: An Example of the Analysis of the “Sageundo Hyeongjian”(Census Register of Sageundo Stations) in 1747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논문은 경상북도 문경시의 ‘옛길박물관’에 소장된 1747년 작성 “沙斤道形止案” 자료에 수록된 驛人들의 職役・신분이 어떠했으며, 또 어떠한 변동 양상을 보였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사근도형지안”은 경상도 咸陽에 위치한 沙斤驛을 본역으로 하고 인근 14개 驛을 편제한 沙斤道의 역인 현황을 조사・편제한 자료로 그동안 학계에 전혀 소개된 적이 없는 新발견 자료라는 점, 특히 기존에 공개된 여타 형지안과 달리 역인들에 대한 인적 정보가 매우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자료의 분석 결과 확인된 주요 양상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1747년 작성된 “사근도형지안”의 경우 驛吏는 일반 호적의 驛吏戶와 유사하게 기재된 반면, 驛奴婢는 그 직역・신분의 귀속을 명확히 판별하려는 목적으로 ‘驛卒降奴秩’, ‘(驛女)嫁公・私賤所生秩’, ‘(驛吏)娶公・私賤所生秩’ 등과 같이 별도의 항목으로 묶어 기재하였다. 둘째, “사근도형지안”에서 확인되는 驛人의 종류는 驛吏, 驛奴, 驛婢와 日守, 保人 등이었다. 그런데 일수와 보인의 경우 자신들만의 독립 ‘戶’로 편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18세기 중엽 사근도의 주요 역인은 역리와 역노비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사근도 전체로는 역리가 70%의 압도적 점유율을 보였으며 그 다음으로 역노가 20%, 역비가 10%, 그리고 일수의 점유율은 1% 정도에 불과하였다. 넷째, 18세기 중엽 사근도 소속 역노비의 신분 귀속 경향은 父의 직역・신분이 역노・노비였던 자가 64%로, 그리고 母의 직역・신분이 양녀・평민이었던 자가 52% 등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역노비의 부모 결합 경향은 <역노・노비(父)+양녀・평민(母)>이 48%로 절반가량이나 되었다. 다섯째, 18세기 중엽 사근도 소속 역인들의 직역・신분 변동 양상은 주로 역노비로 하락한 경우가 많이 나타났지만, 역노비의 직역・신분 상승 사례도 적잖이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사근도형지안” 자료에서는 역인이 驛役에서 벗어난 경우도 多大하게 확인되었는데, 그 사유로는 老除 및 사망, 도망 등이 가장 빈도가 높았다. 이밖에 私奴, 軍保, 成均進士가 되었거니 驪興君의 후손이었다는 등의 다양한 사유로 驛役에서 벗어나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1747년 “사근도형지안” 자료를 분석하여 역인의 직역・신분 양상을 살펴본 결과 “사근도형지안” 자료가 지니고 있는 가치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었다. 이 자료는 驛人帳籍이라는 형지안 본래의 성격을 매우 충실하게 지니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최상의 驛(道) 形止案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Abstract
This paper analyzes the changes in the jikyeok(work of life: 職役) and status of the station workers(驛人) in the mid-18th century. The data used in the analysis is the “Sageundo Hyeongjian(Census Register of Sageundo Stations: 沙斤道形止案)” written in 1747, which was collected in the “Museum of Old Roads(옛길박물관)” of Mungyeong City(聞慶市), North Gyeongsang Province(慶尚北道). “Sageundo Hyeongjian” is a survey of the current status of stations in the area of Sageundo Stations(沙斤驛) in Hamyang(咸陽) area of Gyeongsang and 14 nearby stations. This data was recently discovered. The major findings were as follows First, in the case of the “Sageundo Hyeongjian”, the station officials(驛吏) are described similar to those of the census register, while the station servants(驛奴婢) are classified for the purpose of clearly identifying his or her status. It is listed as a separate item such as ‘Yeokjolkangnojil(驛卒降奴秩)’, ‘Yeoknyeogakongsacheonsosaengjil(驛女嫁公私賤所生秩)’, and ‘Yeokrichuikongsacheonsosaengjil(驛吏娶公私賤所生秩)’, etc. Second, the types of station workers identified in the “Sageundo Hyeongjian” are the station officials(驛吏), station servants(驛奴婢), station clerks(日守), etc. However, it can be seen that the station clerks were not organized as their own independent “Ho(household: 戶)”. Therefore, the main station workers of the Sageundo Stations was composed of the station officials(驛吏) and the station servants(驛奴婢). Third, in Sageundo Stations, station officials has an overwhelming share of 70%, followed by station man-servants(驛奴) of 20%, station woman-servants(驛婢) of 10%, and station clerks(日守) of 1%. Fourth, the station servants belonging to Sageundo Stations were found to be 64% of those whose father was a station man-servant and 52% of those whose mother was a common woman(良女). As a result, the parents' union of the station servants were 48% of the “father : station man-servant + mother : common woman”. Fifth, the station workers belonging to Sageundo Stations were generally downgraded to the status. However, We were able to confirm a lot of the station servants that raise their status. In conclusion, by analyzing the data of the “Sageundo Hyeongjian” in 1747, we can clearly show the value of the data. This data is very faithful to the original nature of the scheme, which is the census register of the station, and for that reason, it can be regarded as the best data of the present Joseon dynasty era.
참고문헌 (29)
- "乾隆十二年十月日沙斤道形止案", 문경시 옛길박물관, ~
- "『乾隆十二年十月日沙斤道形止案』 전산데이터베이스(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구축)", ~
- "驛吏驛奴婢成冊(靑巖道形止案)", 문경시 옛길박물관, ~
- 趙炳魯, "慶尙道 金泉驛戶口臺帳: 乾隆三年(英祖 14: 1738) 金泉道形止案" (2002), 국학자료원
- "朝鮮王朝實錄", ~
- "備邊司謄錄", ~
- "經國大典", ~
- "續大典", ~
- 趙炳魯, "韓國驛制史" (2002), 한국마사회 마사박물관
- 趙炳魯, "韓國 近世 驛制史硏究" (2005), 국학자료원
- 劉承源, "朝鮮初期의 驛吏의 身分的 地位", (聖心女子大學校) 論文集, 10 (1979)
- 趙炳魯, "조선전기 驛吏에 대한 연구", 석사, pp.1980
- 韓基範, "17世紀 驛屬人의 身分的 地位-丹城戶籍 分析을 中心으로-", (大田實業・中京工業專門大學) 論文集, 13 (1984)
- 崔虎, "朝鮮後期 驛村에 대한 一考察-丹城縣 戶籍大帳을 中心으로-", 中央史論, 4 (1985), 중앙대 사학과
- 趙炳魯, "龍巖車文燮敎授華甲紀念論叢 朝鮮時代史硏究" (1989), 新書苑
- 竹腰禮子, "朝鮮後期 驛民の身分變動について-金泉道·松羅道形止案の分析を中心に-", 待兼山論叢, 25 (1991), 大阪大學
- 裵基憲, "朝鮮後期 驛村에 대하여-驛村의 內部構造 및 性格變化와 관련하여-", 大丘史學, 43 (1992), 대구사학회
- 金重泰, "朝鮮末期 全羅道 鎭安縣의 社會相에 대한 一 檢討", 全州史學, 3 (1995), 전주대 전주사학연구소
- 林學成, "朝鮮後期 私奴婢의 身分變動相에 관한 一硏究-17・18세기 丹城戶籍의 事例分析-", 仁荷史學, 3 (1995), 인하대 사학과
- 林學成, "平民家門의 職役變動相을 통해서 본 조선 후기사회의 身分制動搖-17・18세기 丹城戶籍의 事例分析-", 仁荷史學, 4 (1996)
- 平木實, "朝鮮時代末期の驛における雇工・奴婢に關する一考-『魚川誌・魚川驛誌』などにみえる事例分析をとおして-", 朝鮮學報, 165 (1997), (日本) 朝鮮學會
- 林學成, "朝鮮後期 公奴婢의 身分變動相에 관한 一硏究-17・18세기 丹城戶籍의 事例分析-", 國史館論叢, 86 (1999), 국사편찬위원회
- 문숙희, "조선후기 역촌과 역리의 성격 : 사천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석사, 역사교육, pp.2002
- 井上和枝, "朝鮮時代の驛吏について-驛吏の身分變化と存在樣態を中心に-", 地域總合硏究, 30(1) (2002), 鹿兒島國際大學附屬 地域總合硏究所
- 井上和枝, "朝鮮後期の驛村と驛民-慶尙道晉州牧召村里戶籍大帳を中心に-", 調査硏究報告, 51 (2002), 學習院大學 東洋文化硏究所
- 이노우에가즈에, "19세기 戶籍大帳에서 보는 역촌 사람들의 存在樣態 ― 晉州 召村里를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42, pp.209~261 (2003), 대동문화연구원
- 趙炳魯, "조선후기"金泉道形止案"을 통해 본 驛民의 構成과 職役變化", 慶州史學, 22 (2003), 경주사학회
- 우인수, "19세기초 自如道 驛人의 구성과 그 실태 - 自如道 形止案의 분석을 중심으로 -", 역사학보, (201), pp.87~124 (2009), 역사학회
- 조병로, "조선후기 松羅道 驛民의 家族구성과 婚姻에 의한 身分變動 연구", 역사와교육, (20), pp.173~252 (2015), 역사교과서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