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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淸의 賀表式 반포와 朝鮮 賀表의 변화

A Study on Issuing the Form of Hapyo of Qing Dynasty and Change of Hapyo of Joseon Dynasty after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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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18세기 이후 청의 하표식 반포에 따라 조선 하표가 변화한 양상을 분석한 것이다. 1705년 청은 조선이 올린 하표의 文辭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표식을 반포하겠다는 자문을 발송하였다. 청은 조선이 보낸 하표를 만주어로 번역할 때 많은 수정을 거쳐야 하였다. 그러나 청은 다른 조공국에 하표식을 반포하지 않았다. 이는 청이 병자호란 이후 적용되었던 ‘明의 舊例’를 대체하고 조선을 청의 영향권으로 포함시키는 행위였다. 하표식의 반포는 이를 반포하겠다는 내용을 기록한 반포자문을 발송하였다. 1705년 이후 하표식은 황제의 즉위와 함께 반포되었다. 1723년 이후 하표식 반포자문은 근거가 되는 문서를 인용하였으나 1795∼1796년이 되자 조서와 하표식 반포자문이 반포하였다. 19세기가 되면서 하표식 반포자문은 原奏를 점련하거나 별도로 기재하였다. 이는 하표식 반포의 행정 간소화를 의미하였다. 조선은 청의 하표식 반포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로 황제의 하표식은 조선 내부의 논의에 따라 준행하였다. 이는 조선에서 올린 하표에 황제의 硃批에 知道라는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황태후의 하표식은 전례가 없던데다 방물은 있으나 표는 없다는 이유로 준행을 거부하였다. 청은 나라마다 풍습과 표문의 체제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전례대로 할 것을 승인하였다. 그러나 청은 황태후의 하표식을 지속적으로 반포하였고 조선 또한 동일한 논리로 대응하였다. 조선과 청의 하표는 1705년을 기점으로 그 양식이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조선과 청의 하표는 기두어의 하표의 발급 일자와 하표를 올리는 행위, 1帖 당 行數의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청은 하표의 양식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았다. 이처럼 하표식의 반포와 하표의 변화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양국이 하표식 반포와 준행에 대해 협의하였고, 그 결과 조선의 하표가 청의 하표식을 따랐던 것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is to analyze changing the aspect of Hapyo(賀表, Hèbiǎo), according to issue the form of Hapyo of Qing dynasty after 18th Century. Qing sent to Jamun(咨文, Zīwěn), because Hapyo which Joseon sent wasn't fit to expression. Qing translated and corrected Hapyo of Joseon to Manchu Language, But Qing didn't issue the form of Hapyo to other tributary states, This means Qing substituted the old system of Ming dynasty which was applied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and covered Joseon to Qing's orbit. Issuing the form of Hapyo was sent with Jamun included how to issue the form of Hapyo. After 1705, the form of Hapyo was issued when the emperor of Qing ascended the throne. After 1723, issuing the form of Hapyo quoted the documents which was based on. When 1795~1797, Jamun which was included to issue the form of Hapyo and Joseo(詔書, Zhàoshū) sent to Joseon together. At 19th century Jamun which was included to issue the form of Hapyo was attached to Wonju(原奏, Yuánzòu), or separately written. This means issuing the form of Hapyo had been simplified procedure of administration Joseon showed two responds about issuing the form of Hapyo. First, Joseon followed the form of Hapyo of the emperor, by discussing between king of Joseon and vassals. This can be known the expression of Jubi(硃批, zhūpī) in the Hapyo of the emperor or Qing. Second, Joseon refused to follow the form of Hapyo of the empress of Qing, because it was unprecedented, moreover, the empress of Qing was not given Hapyo but present. Qing admit the differences of custom and systems of Pyo(表, Biǎo) between countries. So Qing approved that Joseon followed the precedent, but Qing issued the form of Hapyo of the empress, and so Joseon reacted same as well. After 1705, the Hapyo of Joseon and Qing had a similar form. But the Hapyo of Joseon and Qing was different in the existence of sending date of Hapyo, the action of offering Hapyo, and the number of line per one book. Qing didn't regulate the form of Hapyo. The issuing the form of Hapyo and change of Hapyo wasn't that unilateral. Joseon and Qing discussed with the issuing and follow the form of Hapyo, so Hapyo of Joseon followed the form of Hapyo of Q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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