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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반남박씨의 선조현양사업과 족적 결속

Activities of Exaltating Ancester of Bannam Park Clan and their Clan’s Consoli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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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논문은 17세기에서부터 18세기말에 이르는 반남박씨의 선조현양사업과 족보의 편찬, 선조 묘의 관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여러 논의를 소개하고 아울러 이를 통한 족적 결속 과정을 검토하였다. 17세기 후반 박세채가 처음 족보 편찬 작업을 시작하기 이전의 계보 기록들은 소종(小宗) 차원의 영성(零星)한 계보와 선대 사적 기록만 있었다. 같은 시기에 추진된 반남 선생과 야천 선생 현양 사업은 조정에서 적극 받아들여져서 추시(追諡), 치제(致祭), 향사(享祀)를 하게 되었다. 반남 선생의 의리에 대해서는 송시열과 박세당의 간접적인 논쟁이 있었다. 송시열은 존양(尊攘)의 의리가 있다고 보았고 박세당은 그러한 것보다는 고려 왕조에 충성을 다했다는 의리의 측면에서 추시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7세기 후반 20여 년에 걸쳐서 편찬한 『반남박씨세보』 계해보가 박태보에 의하여 간행이 되고 『반양이선생유고(潘陽二先生遺稿)』와 『숭효록(崇孝錄)』도 간행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모두 박소(朴紹)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한 경화사족이 된 반남박씨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1739년 본관지 반남 봉현 석천암의 소실과 다음 해인 1740년 석천암 중수(重修)는 반남박씨의 족적 인식을 좀 더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석천암 중수를 하는 과정에서, 지방관을 하는 서울 출신 반남박씨 경화사족들을 중심으로 출연을 하여 1년 만에 복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국의 일족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대종 차원의 족적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1766년에 간행된 병술보(丙戌譜), 1825년의 을유보(乙酉譜)가 호장을 시조로 하여 대종 차원의 족보를 확대 편찬할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경상도 합천 화양동에 있는 야천 선생의 묘소는 안의현에 현감으로 간 연암 박지원이 중심이 되어 원래의수준으로 제전(祭田)과 병사(丙舍)를 회복시키고 관리를 합천 관의 작청(作廳, 질청)에 맡겼다. 직접 묘 관리를 하지 못하고 그 근처 고을의 수령으로 와서야 참배를 하는 정도인 상황에서는 그러한 방식의 관리가 더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조선후기 박세당과 박세채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 선조 현양 사업의 전개 과정과 반남 봉현의 석천암중수, 합천 화양동 야천 묘소의 관리, 나아가 반남박씨 족보, 선현 사적의 간행 등에 대한 반남박씨 일족의활동을 통하여 조선후기의 족적 결속이 소종 중심에서 점차 대종으로 확대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Abstract

This thesis introduce the exaltation activity of eminant ancester, compilation of family lineage book and conservation of ancester tomb of the Bannam Park clan from 17th to the end of 18th century. In the process of their activitys, we can review their clan’s unification. Lineage documents before Park Se-Chae’s compiling the lineage book in the end of 17th century are the loose records of small lineage level and historical remains. In the same time, the activities of exaltation to the ancester Bannam and Yacheon were accepted by the royal court, granted a posthumous epithet and held a memorial service. In the process, there were discussions on the royalty of the ancester Bannam between Song Si-Yoel and Park Se-Dang. Song maintain the royaty of Bannam as the protection of emperor and expulsion of barbarians, on the other hand Park assisted that Bannam have remaind faithful to Goryo. Bannam Park lineage book(pub. by Gyehae year) was published by Park Tae-Bo, in the same time Banyang Yiseonsaeng Yugo(潘陽二先生遺稿) and Soonghyorok(崇孝錄) were also published. These works were produced by the Gyonghwa Sajok(Sajok living in Seoul) family who were descendants of Park Soh. In the year of 1739, Seokcheonam was destroyed by fire and in the next year it was restored. The campaign made the consolidation of the clans widely. In the campaign, all the family and relatives recognised each other. Lineage books published in the year Byeongsool 1766 and in the year Eulyu 1825 were made in the level of wide family. The campaign was the momentum of them. Park Jee-Won as a county prefect has restored the house and fund for the management of the tomb Yacheon and commit the management to the administrative agency. We can trace the development of clan’s consolidation from small family to larg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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