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고려 말-조선 초 공납자기 생산체계의 변화

Changes in the ceramic ware production system as a public imposts tax payment during the end of Goryo ‐ early Joseon Dynasty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고려시대에 전라도 강진 요장(窯場)의 공납자기(貢納磁器) 생산은 14세기 3/4분기에 중단되었다. 이후 공납자기 생산지는 1389년 이전에 강진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고, 1392년 조선 건국 이후에는 충청도·전라도·경상도의 여러 요장으로 확산되었다. 자기의 생산은 특정한 기술력을 지닌 사기장인(沙器匠人)과 가마를 포함한 요업시설을 갖추어야 가능하다. 이 점에서 14세기 4/4분기부터 강진 이외의 여러 요장에서 생산된 공납자기는 특정한 종류의 공물(貢物)을 국가에 대한 신역(身役)으로서 생산한 정역호(定役戶) 공물에 해당한다. 조선은 국가 사무를 수행한 여러 관사의 재원을 공물로 충당하였고 자기는 여러 공물 중 한 종류였다. 조선 초 공물의 조달체계는 크게 분정(分定)과 상납(上納)으로 구분된다. 중앙정부가 공안(貢案) 개정을 통해 공액(貢額)을 정하여 도(道) 단위로 분정하고, 도가 이를 군현(郡縣)에 나누어 정하였다. 공납자기의 경우 지방관이 관할군현의 정역호인 사기장인호로부터 자기를 징수하여 중앙정부에 상납하였다. 1392년부터 1417년 사이에 관사의 재원으로 조달된 자기관련 업무를 수행한 관사에는 사선서(司膳署)와 장흥고(長興庫)가 있다. 사선서는 어선을 포함한 궁궐 안의 음식제공을 담당하였고, 장흥고는 그릇의 관리는 전담하였다. ‘司膳’명과 ‘長興’명자기는 조선 초의 대표적인 공납자기이다. 그러나 1417년 4월에 조선 정부는 공납자기의 양(액수)을 관사별로 나누어 정하고, 이를 분정받은 군현에는 자기를 납부할 관사명을 표기하여 생산하도록 하였다. 이 조치 이후 공납자기에 관사명과 생산 군현명인 지명(地名)이 표기되었다. 이상의 공납자기 생산체계 변화는 태종대의 공안개정 논의, 세종조상정공안이 반영된 것으로 그 결과는 1424년 이후 『世宗實錄』地理志에 139개소에 달하는 자기소(磁器所)로 기재되었다.

Abstract

During the Goryo period, production of the ceramic ware(貢納磁器) for tax payment of Gangjin ceramics workshop(窯場) was discontinued in the third quarter of the 14th century. Since then the production site of the ceramic ware for tax payment was moved to other regions outside of Gangjin before 1389, and after 1392, when the Joseon Dynasty was founded, it spread to various ceramics workshops in Chungcheong, Jeolla, and Gyeongsang provinces. For the ceramic ware production, ceramic craftsman with specific technical skills and pottery facilities including kilns. In this respect, since the fourth quarter of the 14th century, it is possible that the ceramics for the public payer produced in various places other than Gangjin is that produced certain kinds of tributes as new tax payment method for Jeongyeokho(定役戶) by a physical labor(身役). Joseon Dynasty secured the finances of the various government offices that carried out public affairs as a tribute and ceramic ware was one of several tributes. The procurement system of the early Joseon tribute is largely the divided(分定) and the offering a tribute(上納). The central government shall establish Gong-an(貢案) that was reinforced with its status as a national budget ledger worthy of name through its revisions and divide it into the province(道), and the provinces shall divide it into local counties(郡縣) and prefectures. In case of a ceramic ware as a tribute, the local authorities collect the ceramic ware from the chief craft masters who are the households for tax payment(定役戶) of jurisdictional county, and pay them back to the central government. Between 1392 and 1417, the government offices that carried out the ceramic-collecting related work procured by government offices include the (司膳署) and Jangheung-go(長興庫). Saseonseo(司膳署) was in charge of providing food in the palace, including fresh fish and Jangheung-go was responsible for the management of the ceramic ware. The ceramic ware with name-marked "司膳" and the "長興", are representative ones for tax payment. However, in April 1417, the quantity (amount) of the ceramic ware for tax payment was decided by government office, and the counties(郡縣) received the allocation and ordered tax payer pottery to produce them with indicating the name of government office to be paid on the ceramic ware. After the measures they started to mark the name of the government office and of the production place on the ceramic ware. The changes in the production system of the ceramic ware for tribute system discussed above were reflected from discussion of the Gong-an Revision (貢案改定)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and the Gong-an(貢案) presented in King Sejong period (世宗朝詳定貢案) and the results listed as 139 places of ceramics workshops after 1424 in the Sejong sillok jiriji (世宗實錄 地理志, Geographical Appendix to the Annals of King Sejong).

참고문헌 (36)

  1. "高麗史節要", ~
  2. "太祖實錄", ~
  3. "太朝實錄", ~
  4. "太宗實錄", ~
  5. "世宗實錄", ~
  6. 강경숙, "蓮唐草文 變遷과 印花文 發生 試考-廣州 陶水里 粉靑沙器 窯址 대접파편을 中心으로", 梨大史苑, 20 (1983), 梨大史學會
  7. 강경숙, "粉靑沙器硏究", 박사, 사학과, pp.1985
  8. 김윤정, "고려말·조선초 명문청자 연구", 박사, 미술사, pp.2011
  9. 김윤정, "고려말․조선초 供上用 銘文靑瓷의 이행 과정과 제작 배경", 석당논총, (55), pp.147~185 (2013), 석당학술원
  10. 김윤정, "高麗末․朝鮮初 司饔의 성격과 역할", 한국학연구, (45), pp.159~182 (2013), 한국학연구소
  11. 강북구 수유동요지 출토 청자의 성격과 양식적 특징, 강북구 수유동 가마터 발굴조사보고서, "김윤정", 서울역사박물관, ~ (2013)
  12. 김철웅, "고려말 房士良의 時務 11事와 정치 성향", 동양학, (44), pp.181~200 (2008), 동양학연구원
  13. 문경호, "여말 선초 조운제도의 연속과 변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17(1), pp.65~102 (2014), 역사문화학회
  14. 박경자, "조선 초 ‘司膳’명자기의 성격", 陶藝硏究, (28) (2019),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15. 박경자, "朝鮮 15世紀 磁器所의 성격", 미술사학연구, 270(270), pp.97~124 (2011), 한국미술사학회
  16. 박경자, "15세기 貢物의 운송방법과 분청사기 銘文의 지역별 특징", 역사와 담론, (47), pp.215~254 (2007), 호서사학회
  17. 박경자, "14세기 康津 磁器所의 해체와 窯業 체제의 二元化", 美術史學硏究, 238․239 (2003), 한국미술사학회
  18. 소순규, "고려에서 조선으로" (2019), 역사비평사
  19. 소순규, "朝鮮初期 貢納制 운영과 貢案改定", 박사, 한국사학과, pp.2017
  20. 이영, "왜구의 단계별 침구 양상과 고려의 대응", 동북아 문화연구, 1(31), pp.181~212 (2012), 동북아시아문화학회[DOI]
  21. 한성욱, "高麗陶瓷新論" (2009), 學硏文化社
  22. 한성욱, "高麗後期靑瓷の硏究", 文化科學硏究科, pp.2006
  23. 한성욱, "高麗 後期 ‘正陵’銘象嵌靑瓷의 性格", 東岳美術史學, (6) (2005), 동악미술사학회
  24. 江都 고려왕릉展,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
  25. 한국가마터 발굴현황 조사 ⓛ고려청자, "국립광주박물관", ~ (2019)
  26. 한국가마터 발굴현황 조사 ②분청사기 上, "국립광주박물관", ~ (2020)
  27. 慶尙北道 1314-1896, "국립경주박물관", ~ (2014)
  28. 국립중앙박물관, "高麗陶瓷銘文", ~ (1992)
  29. 상주 상판리 자기가마1 유적, "상주박물관", ~ (2015)
  30. 상주 상판리 자기가마6 유적Ⅰ·Ⅱ, "상주박물관", ~ (2017)
  31. 상주 우하리 유적 학술발굴조사 보고서, "상주박물관", ~ (2020)
  32. 강북구 수유동 가마터 발굴조사보고서, "서울역사박물관", ~ (2013)
  33. 高靈 星山 沙鳧洞 陶窯址, "(財)大東文化財硏究院", ~ (2012)
  34. (재)대한문화유산연구원, "양산 가산일반 산업단지 조성사업 구간 내 유적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 ~ (2021)
  35. 陜川 將臺里陶窯址, "(財)東西文物硏究院", ~ (2012)
  36. 김해 상동 분청사기 가마터, "(財)東亞細亞文化財硏究院", ~ (2018)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6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