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당동맹의 전개 과정
The development process of Silla and Tang Alliance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나당동맹은 649년에 성립되었지만 655년까지는 사실상 중단되었고, 655년부터는 명목적인 상태로 유지되었다가 659년에 재성립된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나당동맹은 두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으며, 이것을 제1차 나당동맹과 제2차 나당동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나당동맹은 크게 진덕왕대와 무열왕대의 2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김춘추의 신분 변화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나당동맹은 기본적으로 정치동맹과 군사동맹의 성격뿐만 아니라 당제를 수용하여 신라의 제도와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문화동맹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655년부터 백제가 사치와 향락에 빠지자 659년에 무열왕은 김인문을 당에 파견하여 군사를 요청하였다. 김인문은 당 고종에게 백제의 대내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나당동맹의 재성립을 제의하였다. 당은 ‘고구려 선공’에서 ‘백제 선공’으로 전략을 변경하였고, 백제 고지에 도호부의 설치와 신라를 정벌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는 649년에 제1차 나당동맹이 성립할 때부터였던 당이 백제 고지에 도호부를 설치할 것을 알고 있었다. 당 태종은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한 이후에 유민들의 반발을 평정하기 위하여 도호부의 설치를 제안하였다. 김춘추는 당 태종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의 제안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649년 제1차 나당동맹은 김춘추와 당 태종에 의해서 성립되었고, 659년 제2차 나당동맹은 김춘추의 아들인 김인문과 당 태종의 아들인 당 고종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따라서 나당동맹은 김춘추와 김인문, 당 태종과 당 고종의 부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그리고 649년 제1차 나당동맹은 ‘고구려 선공’이었지만, 659년 제2차 나당동맹은 ‘백제 선공’으로 변하였다.
Abstract
The Silla and Tang Alliance, established in 649, was actually discontinued after the death of Tang Taizong and re-established about 10 years later, in 659. Thus, the Silla and Tang Alliance was made on two occasions, and this is called the First Silla and Tang Alliance and the Second Silla and Tang Alliance. Since 655, Baekje had been in a chaotic situation. In 659, King Muyeol sent Kim In-mun as an envoy to Tang to propose the re-establishment of the Silla and Tang Alliance and Tang Gaozong accepted it to re-establish the Silla and Tang Alliance. The first Silla and Tang Alliance, rebuilt in 649, changed its strategy to 'first attack Goguryoe' and the second Silla and Tang Alliance, rebuilt in 659, changed its strategy to 'first attack Baekje'. After conquering Baekje, the issue of installing the Tohobu on Baekje Heights and defeating Silla was discussed. After defeating Goguryo and Baekje, Tang Taizong proposed the installation of the protectorate in both countries, and Kim Chun-chu accepted this. Kim Chun-chu thought it practically difficult to suppress the resistance of the peoples of the two countries and took advantage of Tang to solve the problem. The plan for Tang to defeat Silla was communicated to Silla by Kim In-mun.
참고문헌 (36)
- "삼국사기", ~
- "구당서", ~
- "신당서", ~
- "당회요", ~
- "자치통감", ~
- 권덕영, "고대한중외교사" (1997), 일조각
- 노중국, "백제부흥운동사" (2003), 일조각
-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2008), 서울대 출판문화원
- 이호영, "신라삼국통합과 여ㆍ제패망원인연구" (1997), 서경문화사
- 장원섭, "신라 삼국통일 연구" (2018), 학연문화사
- 장창은, "고구려 남방 진출사" (2014), 경인문화사
- 주보돈,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2018), 지식산업사
- 김덕원, "나당동맹의 성립 과정", 민족문화연구, (95), pp.9~43 (2022), 민족문화연구원[DOI]
- 김덕원, "신라 중대 초 당제의 수용과 정비", 신라사학보, (49), pp.49~74 (2020), 신라사학회
- 김복순, "산이지관스님화갑기념논총 한국불교문화사상사(상)" (1992)
- 김영수, "고대 첩자고", 군사, 27 (1993)
- 김영수, "김유신의 첩자활용과 첩보술에 관한 일연구", 군사, (62), pp.33~64 (2007),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 김진한, "「답설인귀서」(答薛仁貴書)에 보이는 신라·당밀약 기사의 사료적 검토", 인문논총, 71(1), pp.253~277 (2014), 인문학연구원[DOI]
- 박찬흥, "莊義寺의 창건 배경과 장춘랑파랑설화", 서울과 역사, (96), pp.7~47 (2017), 서울역사편찬원[DOI]
- 방용철, "연개소문 집권기 고구려의 정치 운영", 박사, pp.2017
- 방향숙, "唐 太宗·高宗代 한반도 정책과 百濟의 위상 -당 태종·고종본기를 중심으로-", 백제학보, (27), pp.51~80 (2019), 백제학회
- 방향숙, "이기백선생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 (상)" (1994), 일조각
- 선봉조, "7세기 제ㆍ려동맹 연구", 박사, pp.2017
- 윤성호, "신라의 한강유역 영역화 과정 연구", 박사, pp.2017
- 윤성환, "650년대 중반 고구려의 대외전략과 대신라공세對新羅攻勢의 배경", 국학연구, (17), pp.153~188 (2010), 한국국학진흥원[DOI]
- 이도학, "나당동맹의 성격과 소정방피살설", 신라문화, (2) (1985)
- 이문기, "648⋅649년 신라의 對百濟戰 승리와 그 의미", 신라문화, 47, pp.195~240 (2016), 신라문화연구소
- 이민수, "백제 멸망기 당의 신라 침공 계획", 한국고대사탐구, (33), pp.373~409 (2019),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임대희, "김문경교수정년퇴임기념 동아시아사 연구논총" (1996), 혜안
- 정원주, "高句麗 滅亡 硏究", 박사, 한국사학, pp.고고학전공, 2013
- 조재우, "「劉仁願紀功碑」의 해석과 당조의 백제고토 지배방식", 사림, (61), pp.101~128 (2017), 수선사학회[DOI]
- 주보돈, "7世紀 羅唐關係의 始末", 영남학, (20), pp.131~172 (2011), 영남문화연구원[DOI]
- 주보돈, "羅唐同盟의 始末", 대구사학, 126, pp.61~98 (2017), 대구사학회[DOI]
- 최현화, "7세기 중엽 당(唐)의 한반도(韓半島) 지배전략(支配戰略)", 역사와 현실, (61), pp.147~173 (2006), 한국역사연구회
- 최호원, "고구려 후기 국내정세와 신라관계", 박사, pp.2020
- 한준수, "신라 문무왕대 삼국 통일의 완성과 水軍의 활약", 신라문화, 59, pp.109~136 (2021), 신라문화연구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