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비 加上尊號儀의 의례와 음악 -정조대(1776∼1800) 『尊號都監儀軌』를 중심으로-
Ritual and Music of Added Eulogistic Title Ceremony for Queen Mother - With focus on Chŏnho togam ŭigwe during the reign of King Chŏngjo (1776-1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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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공덕을 나타내기 위해 아름다운 칭호를 올리는 존호 의례는 연향 및 하례와 더불어 기쁨을 표현하는 상징 의식이다. 정조대(1776∼1800)에 왕대비(貞純王后:영조 계비)에게 올린 존호는 5개이다. 즉, 1778년(정조 2)에는 왕대비로 승격된 것을 경축하여, 1783년(정조 7)과 1784년(정조 8)에는 왕세자 탄생과 책봉을 경축하여, 1787년(정조 11)에는 홍국영 일당을 토벌하여 종묘사직을 안정시킨 것을 기념하여, 1795년(정조 19)에는 보령 51세를 경축하여 존호를 올렸다. 존호를 올린 뒤에는 그 기쁨을 백성들과 같이 나누기 위해 사면령을 내리고 환곡(還穀)과 요역(徭役)을 탕감해주며, 경과(慶科)를 시행하여 인재를 발탁하는 등의 은택을 베풀었다. 생존한 이에게 올리는 가상존호의(加上尊號儀)는 크게 세 절차로 구성된다. 책(冊)·보(寶)가 완성되면 존호도감에서 도제조(都提調) 이하가 책·보를 요여(腰輿)와 채여(彩輿)에 봉안하여 받들고 대내(大內)로 들이는 내입(內入), 임금이 대내에서 여관(女官)인 상전(尙傳)을 통하여 왕대비에게 책·보를 친히 바치는 친진(親進), 상전과 도제조 이하가 책·보를 요여와 채여에 봉안하여 왕대비전으로 받들고 가고, 여관이 책·보를 읽는 독책보(讀冊寶)가 그것이다. 1795년(정조 19)의 왕대비 가상존호의(加上尊號儀)은 다음과 같다. 책·보를 존호도감에서 대내로 내입할 때, 18명의 악공과 1명의 집박전악(執拍典樂)이 전부고취(前部鼓吹)를 진작(振作)하였다. 행사 당일, 친진(親進)하기 위해 임금이 내전(內殿)에서 명정전으로 갈 때 전후고취(殿後鼓吹)를 진작하였으며, 명정전에서는 헌가(軒架)에서 음악을 연주했다. 즉, 임금이 명정문을 통해 들어와 소차(小次)에 들어갈 때까지, 상전(尙傳)에게 책·보를 전하기에 앞서 왕대비에게 임금이 사배(四拜)할 때, 책보를 상전에게 전한 뒤 부복했다가 사배할 때, 규(圭)를 놓을 때 등의 절차에서 헌가 악공이 연주하였다. 친진 절차를 마친 뒤 책·보를 요여와 채여에 봉안하여 왕대비가 납신 수정전으로 받들고 가는 동안은 전부고취를 진작하였고, 임금이 다시 내전으로 돌아갈 때는 전후고취를 진작하였다. 그러나 수정전에서 행하는 독책보의(讀冊寶儀)는 음악 없이 진행되었다. 왕대비가 납신 공간에서 남자 악공들이 연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4차례 존호의례의 용악을 1795년의 경우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는 악기를 진설하였으나 연주하지 않았거나, 악장을 지었는데 노래부르지 않은 것이고, X는 악기를 진설하지 않은 것이며, ○는 악기를 진설하여 연주하거나 악장을 노래부른 것을 나타낸다. 1778년(정조 2)과 1787년(정조 11)에 내입과 친진시(親進時)에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이유는 국상(國喪) 때문이다. 왕대비에게 존호를 올린 1778년(정조 2) 5월은 영조의 국상이 끝난 시점이지만, 정조는 국상을 마쳤다고 해서 인정상 차마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없으니, 담제(禫祭)를 지낸 달에는 악기를 진설만 하고 연주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1778년에는 전부고취와 헌가를 진이부작(陳而不作)하였고, 전후고취는 진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1787년(정조 11) 1월은 문효세자(文孝世子) 상(喪)을 당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기이므로, 전부고취와 전후고취 및 헌가를 모두 진설하지 않았다. 1784년(정조 8)을 제외하고는 독책보시(讀冊寶時)에 모두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이유는 서울에 지속적으로 머물면서 활동하는 장악원 소속의 여악(女樂)이 인조반정 이후 폐지된 것과 관련있다.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왕대비나 왕비가 참여하는 의례에서는 여악 또는 장님악공인 고사(瞽師)가 음악을 연주했다. 정조대 존호의례에서는 1783년(정조 7)은 고사악(瞽師樂)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탓에 연주하지 않았고, 1784년(정조 8)에는 장님악공이 헌가에서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1795년(정조 19)은 흉년이라 하여 왕대비가 크게 벌이지 말도록 당부하였으므로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Abstract
The eulogistic posthumous title ceremony 尊號 儀禮, along with court banquet 宴享, congratula- tory ceremony 嘉禮, is to present a beautiful title that represents good deeds as a way of expressing delight. In the reign of King Chŏngjo 正祖 (1776∼1800), the eulogistic title was presented to the queen mother, King Yŏngjo’s subsequent queen (Chŏngsun Queen 貞純王后) five times. The eulogistic title ceremony presented to the king or queen who is living is composed roughly three procedures: naeip 內入, a procedure that when ch'aek 冊 and po 寶 (royal seal where royal good deeds were inscribed) are completed, minister in the eulogistic title authorities enshrines chaekpo in a small palanquin and carry it into the main palace; ch'injin 親進, a procedure that the king himself presents ch'aek and po to the queen mother in the main palace through sangjŏn 尙傳, a senior court lady; and tokch'aekpo 讀冊寶, a procedure that when minister and sangjŏn, a senior court lady enshrine ch'aek and po in a small palanquin and carry them into the queen mother’s palace, the senior court lady reads ch'aekpo. First, focusing on the ceremony in 1795 (the 19th year of King Chŏngjo), music of add edeulogistic title for queen mother was to have chŏnbu koch'wi 前部鼓吹 (front marching band) play music when ch'aekpo were carried into them ainpalace from the eulogistic title authorities. On the day of ceremony, when the king went to the main palace to perform ch'injin, chŏnhu koch'wi 殿後鼓吹 (rear courtyard band) played music and when ch'injin ceremony was under way in the main palace, court musicians played music on the music platform installed in the palace grounds. While ch'aekpo were enshrined in a small palanquin and carried into the queen mother’s palace after finishing the ch'injin procedure, chŏnbu koch'wi played music, and when the king returned to the private palace, chŏnhu koch'wi played music. However, male musicians could not enter the queen mother’s palace where ch'aekpo reading ceremony was performed, so music was not played. When comparing the music on the remaining four occasions with the case in 1795, music was played naeip ceremony and ch'injin ceremony in 1783 (the 7th year of King Chŏngjo) and in 1784 (the 8th year of King Chŏngjo)as in 1795, but music was not played in 1778 (the 2nd year of King Chŏngjo) and 1787 (the 11th year of King Chŏngjo) due to state funeral. In the case of ch'aekpo reading ceremony, music was played only in 1784 (the 8th year of King Chŏngjo) and it was because blind court musicians 瞽師 instead of male court musicians were allowed to play music. Thus it is essential to know the historical backdrop at that time in order to understand the music culture of the Chosŏn Dynasty.
참고문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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