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초(超)합리주의와 접경(接境)의 문명론
The Eastern Trans-Rationalism and the Emergence of New Civilization in the Border Area
유헌식
초록
서구의 합리성 자체는 사태에 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근간으로 한다는 명목 아래, 실제에서 그 합리성은 자기중심적 이성의 확산과 지배로 나타난데 반하여, 동양의 초(超)합리성은 서양의 합리성이 지닌 평면적인 적용을 극복하여 자-타 중심적인 수평적 인간관계를 정립하는입체적 구상에 기여할 수 있다. 서구의 합리성이 지닌 당위적 윤리성은 사실적 비윤리성로 판명되고 있는 지금 동양적인 초합리성은 서구적 합리성의 비윤리성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윤리를 정립하면서도그것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그럼으로써 그것의 객관적인 타당성을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가속화와 더불어상호 평등과 균등의 민주주의적 가치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 이 추세에반하는 비윤리적인 합리주의는 점차 설 땅을 잃게 될 것이고 이에 상응하는 대안을 아시아적 사유는 마련해야 하고 또 마련할 수 있다고본다. 중심도 아니고 주변도 아니지만 또한 중심이면서 주변이기도 한 그러한 중간 구역에서 문명 전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 한에서이 지역은 변화와 혁신이 가능한 경계구역이다. 경계구역에서는 다양한 중심들이 서로 접한다. 그래서 경계구역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또한 이것도 저것도 되는 활동적인 유동체이다. 중심들의 주변이 만나서 경계를 이루고 경계에서 접점(接點)이 생긴다. 바로 이 접점이 문제다. 접점은 모호한 영역으로서 불확실과 혼돈이 지배하지만 이는 새로운 나의 형성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요컨대, 새로운 문명은 인간을 타자 조건적인 유동적인 존재 그리고시간적으로 연속적이면서도 불연속적인 존재로 이해하는데, 인간의이러한 초합리주의적 특성에는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역사 속에 잠재된 타자적 가능성을 현재로 끌어들이는 한 편, 역사와 사회를넘어서 있는 인간 자신의 초월적 특성을 능동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여기서 역사 속의 익숙한 타자와 초월적인 자기의 만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대상을 필요로 하는데, 그 대상은 어느 중심에도 속하지 않은 제 3 지역으로서의 접경구역이다. 한반도는 바로 이 접경구역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새로운 문명의 발현이 가능한 땅이다. 하지만 접경에서의 혼돈은 지양되어야 하며, 지양의 방향은 평면에서 충돌하는 욕구들을 입체적으로 해결하는 데 있다. 원효의 화쟁 개념은 비록 과거에 불가적 지성계에서만 부분적으로 수용되었을 뿐 아직까지그 개념적 효용성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는데, 이 화쟁 사상을 되살려오늘날 복합적이고 중첩적인 한반도의 초합리주의적인 현실을 진단하고 그것이 직면한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반도에서 새로운 문명의 서장이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