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과 폭력 그리고 사랑-레비나스와 헤겔을 중심으로-
Face, Violence and Love : Hegel versus Levinas
황설중
초록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 얼굴을 정면으로 주제화한 인물은 레비나스이다. 그는 타인의 얼굴을 자기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가 보기에, 서구의 현대사가 야만과 폭력으로 점철된 것은 바로 동일성과 전체성의 철학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폭력이 난무하도록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레비나스는 헤겔을 지목하고 있다. 헤겔 철학에서는 동일성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헤겔 변증법이 의존하고 있는 전체화에 저항함으로써 폭력이 아니라 평화가 우리의 삶에 깃들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러나 레비나스만큼 사랑을 추구했고, 사랑을 철학 자체의 원리로 삼으려고 했고, 식어버린 사랑을 부활시키려 했던 철학자가 바로 청년 헤겔이다. 그는 사랑을 통해서만 주관과 객관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헤겔은 사랑을 추구하는 가운데 사랑의 형이상학이 빠질 수밖에 없는 맹점을 간파하기에 이르렀다. 사랑은 과도한 주관적인 열정으로 인해 사람들을 광신으로 이끌고, 그리하여 사랑의 미명(美名) 아래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게 만든다. 무엇보다 사랑이 갖는 한계란 그것이 어디까지나 느낌이기에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유를 할 수 없게 한다는 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현실에서 불쌍한 이웃을 돕고 섬기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그래서 분명히 레비나스의 얼굴 철학에 열렬히 공감했을 청년 헤겔은 철학의 원리로서 사랑을 포기하였던 것이다. 전체성의 폭력을 조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랑을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청년 헤겔은 사랑에서 상호 인정의 세계로 전향하였다. 레비나스가 헤겔을 비판하는 가운데 놓쳐버린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을 추구하면서 청년 헤겔이 걸어간 사유와 반성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