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초기 전북지역 빨치산의 형성과 경찰 작전
The Formation of a Partisan and a Police Operation in the Jeonbuk area at the Beginning of the Korean War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북상하지 못한 전북지역의 북한군과 좌익세력은 일단 전략적으로 빨치산 활동을 하기 좋은 조건을 가진 김제군의 모악산으로 집결하였다. 그리고 10월 초 가장 큰 규모인 약 1,500명 또는 약 2,500명이 모악산 인근에 있는 김제의 금산지서를 공격하는 등 각종 경찰관서는 물론 면사무소, 금융조합을 전소시키는 등 마을에도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였다. 점차 시간이 가면서 경찰과 국군이 전력을 강화하면서 방어체제를 구축하자 이들은 10월 20일 전후로 무주의 덕유산과 진안의 운장산 산악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11월 10일 부안군의 해안 산악지대에서 경찰관서를 공격한 사례를 볼 때 이들 일부가 부안군의 해안 산간지대로 다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치안국은 1950년 12월 6일 지리산지구전투사령부(이하 지전사)와 태백산지구전투사령부(태전사)를 창설하였다. 지전사는 남원에 본부를 두고 전남·북 일원과 경남 서부지역을 담당하게 하였고, 태전사는 경북 영주에 본부를 두고 경북 일원, 강원 남부, 충북 동부지역을 담당하게 하였다. 국군 역시 제11사단이 1950년 10월 4일부터 호남과 지리산지구 작전에 돌입하여 예하 제9연대를 전남으로, 제13연대를 전북으로, 제20연대를 지리산지구로 각각 분산하고, 5개 경비대대와 청년방위대까지 동원하여 빨치산 진압작전을 수행하였다. 이후 전북지역 빨치산들은 같은 해 8월경 대둔산을 거쳐 11월 말 다시 지리산, 태백산, 신불산 등으로 이동하였다. 1951년 3월 백야전사의 강력한 진압작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분산하여 1952년 7월 지리산으로 은신하였다. 그리고 1953년 5월 창설된 빨치산 전담 경찰진압부대인 서남지구전투경찰대(서전경)가 작전을 개시할 때 전북도당 빨치산은 지리산에 거점지를 두고 있었다. 이후 같은 해 12월 박전투사령부가 국군의 남부지구경비사령부와 서전경을 통합하여 강력한 작전을 계속 이어 나갔다.
Abstract
North Korean troops and left-wing forces in the North Jeolla Province that failed to come to North Korea gathered together as Moaksan of Gimje-gun, which has good conditions for strategically engaging in partisan activities. In addition, in the beginning of October, about 1,500 or 2,500, the largest, attacked the Geumsan area in Gimje near Moaksan Mountain, causing damage to the village, including various police offi ces and burning offi ces and fi nancial unions. Gradually, as time went by, the police and the ROK military strengthened their powers and established a defense system, and they seemed to have moved to the mountainous areas of Deokyusan and Jinan in Unjang before and after October 20th. Considering the attack on the police station in the coastal mountainous area of Buan-gun on November 10th, it is estimated that some of them moved back to the coastal mountainous area of Buan-gun.Participants in Jeonbuk area passed through Daedunsan around August of the same year and moved to Jirisan, Taebaeksan, and Sinbulsan again in late November. In March 1951, a lot of casualties were disseminated through the powerful suppression of the White Knights’ warriors, and in July 1952, they fl ed to Jirisan Mountain. In addition, the Jeollabuk-do Party, located in Jirisan, was established when the Southwestern District Combat Police (Seojeon-kyeong), a police suppression unit dedicated to Mt. Subsequently, in December of the same year, the Park Combat Command continued its strong operation by integrating the ROK Army’s Southern Coast Guard Command and the West Coast.
참고문헌 (28)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대비정규전사" (1998), 서라벌인쇄주식회사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 6" (2009), 서울인쇄정보산업 협동조합
- 금산군지편찬위원회, "『금산군지』 1-생명의 고향, 미래의 땅" (2011), 제일인쇄사
- 김제경찰서, "사령원부 1950∼1957", ~ (1958)
- 김제경찰서, "1953년 관내상황", ~ (1954)
- 무주군지편찬위원회, "무주군지", 대흥정판사, ~ (1990)
- 육군본부, "공비토벌사", ~ (1954)
- 임실군, "임실군지", 청웅제지 인쇄부, ~ (1997)
- 장수군, "장수군지", 남원 중앙인쇄사, ~ (1997)
- 전북경찰국, "1950년 11월 관내상황", ~ (1950)
- 전주시, "전주시사" (1997), 신아출판사
- 김득중, "빨갱이의 탄생-여순사건과 반공국가의 형성" (2015), 선인
- 김경현, "민중과 전쟁기억" (2007), 선인
- 김광운, "역사학의 시선으로 읽는 한국전쟁" (2010), 선인
- 김동춘, "냉전, 반공주의 질서와 한국의 전쟁정치 : 국가폭력의 행사와 법치의 한계", 경제와 사회, (89), pp.333~366 (2011), 비판사회학회
- 김형필, "들불을 찾아서-돌아온 빨치산의 수기" (1952), 한국출판사
- 박동찬, "호남지구 게릴라 토벌작전 분석 (1950.6~1951.4)", 군사, (49), pp.231~260 (2003),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 윤장호, "호국경찰전사" (1954), 제일
- 이광일, "한국전쟁의 이해" (1993), 역사비평사
- 이선아, "역사학의 시선으로 읽는 한국 전쟁-사실로부터 총체적 인식으로" (2010), 휴머니스트
- 윤충로, "20세기 한국의 전쟁 경험과 폭력", 민주주의와 인권, 11(2), pp.239~277 (2011), 5.18연구소
- 전상인, "한국전쟁과 국가건설", 아시아 문화, 16 (2010), 아시아문화연구소
- 전라북도경찰청, "전라북도 호국경찰사" (2012), 인문사artCom
- 전재곤, "강원경찰전사" (2013), 강원지방경찰청, 디자인 맑음
- 전쟁기념사업회, "한국전쟁사-낙동강에서 압록강으로 4" (1990), 행림출판
- 전쟁기념사업회, "한국전쟁사-중공군개입과 새로운 전쟁 5" (1990), 행림출판
- 최용호, "한국전쟁시 북한군 제6사단의 서남부 측방기동 분석", 전사, 4 (200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한지희, "정부 수립 직후 극우반공주의가 남긴 상처 국민보도연맹의 조직과 학살", 역사비평, 37 (1996), 역사비평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