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후기 대동강 수로의 방어체계
The Defense System of Daedong River Waterway in the Late Goguryeo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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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수‧당의 대동강 수로 이용사례를 검토하고, 근대 지도와 해도(海圖), 수로지(水路誌) 등을 활용하여 대동강의 유로(流路)‧조류(潮流)‧지형(地形) 등을 분석하였다. 대동강 수로의 주요 특징구역은 크게 4곳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하구 구역은 강폭이 5.5km로 적 수군이 대규모로 접근할 때 직접 대응이 쉽지 않다. 대동강 하구의 북안에 대당두산(大堂頭山)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 봉수가 설치되어 있다. 둘째, 철도 구역은 강폭이 550m로 철도와 동진의 방어병력들이 연계하여 적 수군을 방어하기 용이하다. 조류가 5~7kt로 빠르며 유로도 U자로 급격히 변곡되기 때문에, 적 수군은 철도 일대에서 조류를 기다리며 대동강 상류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셋째, 보산 구역은 강폭이 550m로 서학산과 정이산의 방어병력들이 연계하여 상륙하는 적을 공격하기 용이하다. 철도와 마찬가지로 강폭이 좁은 데다가, 대형 선박들이 보다 상류로 운행하기 곤란한 한계지점이다. 넷째, 도성 구역은 육로로 접근하는 적을 평양성 자체에서 방어할 수 있다. 보산 구역이 돌파되고 적의 대규모 병력이 상륙해 육로로 접근해 올 경우, 해발고도 100m도 되지 않는 적두산성에서 직접 방어는 쉽지 않다. 수‧당의 대동강 수로 공격시 고구려는 철도와 보산 일대에서 방어하며 적의 공세를 둔화시켰다. 결국 고구려가 평양성 방어에 성공하면서 수‧당의 대동강 수로를 통한 공격은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Abstract
In this paper, the use cases of the Daedong River(大同江) waterway of Sui(隋) and Tang(唐) were reviewed, and the Daedong River waterway was analyzed using modern maps and charts. There are four characteristic areas of the Daedong River waterway. First, the estuary area of the Daedong River has a river width of 5.5km, making it difficult to directly respond when enemy forces approach it on a large scale. Second, the Cheoldo(鐵島) area has a river width of 550m, making it easy to defend the enemy forces by linking the defensive forces of the Cheoldo and the Dongjin(東津). Third, the Bosan(保山) area is 550m wide, making it easy for the Seohaksan(棲鶴山) and the Jeongyisan(鼎耳山) defensive forces to link and attack enemies landing. Fourth, the capital area can defend the enemy approaching by land from the Pyongyang-seong(平壤城) itself. In the event of Sui and Tang's attack on the Daedong River waterway, Goguryeo slowed the enemy's offensive by defending the Cheoldo and the Bosan area. Eventually, as Goguryeo succeeded in defending Pyongyang, both Sui and Tang's attacks through the Daedong River waterway ended in fail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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