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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村 高尙顔의 詩文에 나타난 重農思想에 대하여

A Study on the Physiocration in Go Sangan'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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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이제까지 泰村 高尙顔은 <農家月令歌>의 작자를 에워싼 논의에 등장했을 뿐 그의 詩文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다. 본 연구는 그가 조선 중기의 행정관료이자 탁월한 목민관으로서 임진란 이후의 피폐한 상황에서 重農의 의지를 폈던 사람이었던 점에 착안해 그의 詩文에 나타난 중농사상을 검토해보고자 했다. 우선 그의 문학은 향리인 경상북도 예천 일대의 자연을 문학적 공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속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농민들의 생활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점에서 그의 문학은 향토에 뿌리를 내린 문학으로서 당시 한시 작가들이 보여준 공소한 관념적인 자연예찬의 태도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農家月令』라는 農書를 지어 농민들에게 농업 기술을 가르칠 정도로 그는 당대의 농업 생산성의 제고에 집착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실천적 태도는 그의 시에도 잘 나타난다. 농서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농업은 곧 생명의 양식을 제공해주는 일로서 윤리에 앞서는 절대적 과업이라는 자각이 있었으므로 이러한 시작 태도가 가능했으리라 본다.그는 성공적인 관료 생활을 보내지는 못했으나 지방 행정관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농업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실천했다. 관개를 위한 보의 축조와 농업 기술의 보급을 통해 그는 민중의 삶을 개선해보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문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의 시 가운데서 비에 관한 시가 많은 것은 그가 비를 서정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농업에 절대 불가결한 존재로 파악한 데서 나온 것이다.

Abstract

This thesis is a study on Go Sang-an's poems, especially on his physiocrational works. He was born in a provincial noble family in 1553, and served as a government office of Yi Dynasty for a long time. When Japanese invaded Korea on a large scale, he spontaneously organized civilian army at his own country against brutal enemy. After the War, he saw devastated homeland and made up his mind to reconstruct national economy by restoring agriculture. His literary works was made up on the base of this passion. At this time, so many other bureaucratic poets produced conventioal poetry which imitated Chinese without any reflection. But Go's works are fine fruits due to deep and serious thinking. His poets about the nature is not mere enjoying a wonderful sight, but admiring labor of peasant. For example, the rain represented in his poetry is not a mournful object. It is an natural obligation for elevating the productivity of agriculture.

참고문헌 (2)

  1.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국사편찬위원회
  2. "조선시대 농업과학기술사, 서울대학교 농업개발연구소 학술총서 제1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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