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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월전원회의 사건” 재론: 김일성의 인사정책과 ‘이이제이’식 용인술

1956 August Plenum Incident Revisited: Kim Il-sung’s Cadre Policy for ‘Divide and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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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8월전원회의 사건”은 김일성과 다른 계파 간의 권력경쟁, 또는정책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산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자료들은 ‘8월그룹’이 북한체제수립기부터 김일성 체제의 강화와 각종정책노선들에 적극 협조해 오다가, 1956년 초 자신들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도태되자 김일성 체제를 비판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본연구는 1945년부터 1956년 8월까지 김일성과 8월그룹의 협력과 갈등전 과정을 토론함으로써 “8월전원회의 사건”의 원인을 재조명하였다. 갈등은 스탈린 사후 변화된 중소의 사상과 정책이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차단하고자, 김일성이 선제적으로 취한 인사교체에서 비롯되었다. 그 결과 핵심권력에서 도태된 소수의 연안계와 소련계 간부들은 1956년 2월스탈린격하운동을 계기로 연대하고 김일성에게 인사정책 수정을 요구하였다. 김일성은 이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진압에 나섰으며, 정치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소련의 의향을 적극 이용하였다. 8월전원회의에 앞서 개최된 상무위특별회의에서 8월그룹의 패배는 확실시되었으며, 전원회의 당일은 승패를 재확인하는 자리에 불과하였다.

Abstract

The 1956 August Plenum Incident has been viewed as an outcome of either a long-standing power struggle between Kim Il-sung and his dissenters or a conflict surrounding policy line. However, newly-unearth ed documents demonstrate that the incident members had actively coop erated to strengthen Kim’s rule and policies, and that they began to denounce Kim only after they were deprived of power in early 1956. This study explores the cause of the incident by investigating cooperation and conflict between Kim Il-sung and the incident members from 1945 to August 1956. The incident stemmed from Kim’s preemptive cadre policy designed to forestall infiltration of the Soviet and Chinese policy line into North Korea. Some Yanan faction members and Korean Soviets who were deprived of their power due to the policy, and galvanized by de-Stalinization campaign in February 1956 demanded that Kim Il-sung recalibrate the policy. However, Kim perceived their demand as a challenge to his rule and suppressed them by taking advantage of patronage of Moscow which invariably prioritized stability of his rule. The outcome of this power struggle was already decided at the special session of the Party’s Standing Committee on August 23, while the 1956 August Plenum was a stage reaffirming the group’s def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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