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官人層의 임종 장소와 그 변화상에 대한 고찰
A Consideration of the Death Places of Goryeo Bureaucrats' Families and their Changes over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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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묘지명을 분석한 결과, 고려시대 관인층이 사망한 장소는 크게 집과 사찰 두 곳으로 압축된다. 전체 329건의 묘지명 중에서 사망 장소가 기재되어 있는 경우는 143건이며, 이 중 집에서 사망한 경우는 122명, 사찰에서 사망한 경우는 21명이다. 이를 시대별로 분석하여 보면,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의종대까지 고려의 관인층은 전체 111건 중에서 집이나 사찰에서 사망한 사람이 55건이며, 이 중 집에서 36명, 사찰에서 19명이 사망하였다. 집에서 사망한 사람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대략 5~4명에 1명꼴로 사찰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 무신정권기에는 사망 장소가 확인되는 47건 중 2명만이 사찰에서 사망하였다. 충렬왕대 이후에는 사망 장소가 확인되는 41명 모두 집에서 사망하였다. 고려 관인층은 의종 12~13년에서 명종 15년 사이에 더 이상 사찰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게 되었으며, 세속적 장소인 집에서 임종을 맞는 관습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발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무신정변의 발생으로 개경의 많은 사찰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정변 이후에도 사찰 및 승려들은 계속해서 무신정권과 갈등을 빚었으며, 정변 발생 이후 치안이 불안정해짐에 따라 개경 근처의 사찰들은 도적들의 습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사찰은 요양을 하거나 안온한 죽음을 맞기에는 더 이상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다. 따라서 사찰에서 임종하는 고려 관인층이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급감하게 되었으며, 사찰에서 임종하는 것을 회피하는 풍조가 무신정권 내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보편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유교적인 관념이 강화되고 유교적 상장례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면서, 사찰에서 임종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합리화되고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려후기에는 독실한 불교신자라고 하더라도 사찰이 아닌 세속적 장소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려 관인층의 생각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Abstract
As a result of the analysis of tomb inscriptions from the Goryeo Dynasty, the death places of Goryeo bureaucrats' families can be largely classified into two: their houses, and temples. Breaking it down by era, there were 111 members of Goryeo bureaucrat families buried before the Musin Jeongbeon (a coup d'etat by soldiers), of which 55 had their death places specified: 36 had died at their house, and 19 at the temple. On the other hand, among the 47 people who had died under the soldiers' reign and whose death places could be identified, only 2 bureaucrat family members had met their death at the temple. After King Chungyeol, all 41 bureaucrat family members with specified death places had died in their own home. The reason for this change was as follows: when the Musin Jeongbeon coup broke out, many temples in Gaegyeong - the capital of Goryeo - suffered huge damages. Even after the Jeongbeon, temples and monks maintained serious conflicts with the governing soldiers. Therefore, temples were no longer an appropriate place to seek health treatment or peaceful death. For this reason, the number of Goryeo bureaucrat family members who chose to die at the temple drastically decreased after the Musin Jeongbeon, and the tendency to avoid dying at the temple remained prevalent among bureaucrats' families long after the Jeongbeon. Furthermore, as Confucian ideologies were emphasized and their funeral rituals grew, the idea that death should not be met at the temple seems to have been rationalized and strengthened. Therefore, although bureaucrat family members were devoted Buddhists, it became generally accepted among them that death should be met in a secular place rather than at the temple. This change seems to have had an influence on Goryeo bureaucrat families' perspective on life and death in the long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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