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地藏 結社와 주처신앙
新羅の地藏結社と住處信仰
0
조회
0
다운로드
9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본고는 신라인들의 지장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지장신앙이 결집되어 나타난 오대산 금강사와 보개산 지장주처신앙을 살핀 글이다. 신라인들은 참회교법을 강조하였고, 오대산사적은 신라인의 참회․수계 등 일련의 신앙활동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대산사적은 화엄과 밀교(금강계만다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중국과 달리 신라인의 불국토사상과 호국불교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서 신라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더 나아가 지장신앙을통해 공관․유식사상을 융섭하고, 교선일치를 추구하고자 했던 신라인의 總和 불교사상을 엿볼 수 있다. 오대산 남대 금강사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지장신앙을 실천하는 결사였다. 낮에는 ≪지장경≫과 ≪금강경≫을 강독하고 암송하는 한편 寫經도 이루어졌다. 밤에는 그 실천수행의 방법으로 점찰법을 통한 예불과 참회 의식이 행해졌다. 신라의점찰회는 6-7세기 경 원광으로부터 비롯되어 8세기 중엽 眞表에 의해 정착되었고,10세기 오대산 금강사에서 완성되었다. 金剛社는 지장삼부경과 함께 ≪금강경≫을 읽음으로써 유식사상과 공관사상의융섭과 교선의 일치를 실천하고 있었다. 또한 도명존자․무독귀왕 신앙, 명부시왕신앙, 地神신앙은 배제되어 있었다. 이것은 진표의 점찰법회에서도 나타나며, 금강사에는 진표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하대 오대산사적과 사굴산문은 밀접하였다. 사굴산문 범일은 간자를 제작하여 정취보살을 모실 곳을 점찰하는 등 점찰법과 관련되어 있었다. 오대산사적 중 관음(동대)과 지장(남대) 보살은 서대(무량수)와 북대(석가불),중대(문수보살)의 불존과 달리 따로 주처지가 설정되었다. 오대산 금강사와는 별도로 지장주처신앙으로 자리잡은 곳이 보개산 석대암이었다. 석대암은 금빛돼지의화현인 지장보살의 등장으로 지장도량이 되었다. 현재 보개산 심원사에 있는 석조지장보살좌상은 고려(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 신앙 배경에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오대산 남대 금강사의 결사와 매우 관련이 깊다. 보개산 지장주처신앙의 정착과정에 오대산사적에서 빠진 보현보살이 관여된듯하다. 보개산 석대암에 등장하는 돼지는 지장보살의 변화신이었지만, 그 설화속에서 보현보살과 지통으로 대표되는 의상계 화엄승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금빛돼지는 돼지를 중시하는 고구려의 전통과 연결되며, 그러한 인식은 작제건설화에도 나타났다. 석대암은 궁예 태봉의 관할하에 있었던 곳이었다. 궁예의 미륵신앙은 관음과 미타를 함께 받드었으나 진표는 지장․미륵을 신앙하였다. 석대암의 지장신앙과 궁예의 미륵신앙은 서로 화합할 수 없었다. 궁예의 세력하에 있던 보개산에 왕건집안과 관련된 설화가 수용되기에는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석대암 설화는 궁예 사후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장주처신앙의 정착과정에서 고려후기 文日과 中悅․閔漬도 큰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 보개산 지장도량은 지금까지 이어져올 수 있게 되었다.
Abstract
本稿は、新羅人達の地藏信仰を理解するため、さまざまな地藏信仰が重なり合って現れる五台山金剛社と宝蓋山の地藏住處信仰について調べた文章である。新羅人たちは懺悔敎法を强調し、五台山事蹟は新羅人の懺悔、受戒など、一連の信仰活動を全体的に見せている。五台山事蹟は華嚴と密敎(金剛界曼茶羅)の影響を受けたが、中国と違って新羅人の仏国土思想と護国仏敎思想が合わさり合ったものとして、新羅の仏敎の特徵をよく表している。さらにもまして、地藏信仰を通し空觀と唯識思想を融攝させ、敎禪一致を追及しようとしていた新羅人の總和仏敎思想を見ることができる。五台山南台金剛社は、地藏菩薩を奉り地藏信仰を實踐する結寺であった。晝は地藏経と金剛経を講読し暗誦するかたわら、寫経も行われた。夜はその実踐遂行の方法を占察法を通しての礼仏と懺悔儀式が行われた。新羅の占察會は6-7世紀ごろ、円光を始めとする8世紀中期、 眞表により定着されて10世紀の五台山の金剛社にて完成された。金剛社は地藏參拜経と共に、金剛経を読むことにより、唯識思想と空觀思想を融攝させた敎禪の一致を実踐していた。また、道明尊者、無毒鬼王信仰、冥府十王信仰、地神信仰が配置されていた。これは、真表の占察法会にも表現されており、金剛社では真表の伝統が繼承されていたことが分かる。新羅の下代 五台山事蹟と闍崛山門は密接になった。闍崛山門の梵日は簡者を製作して正趣菩薩を奉る場所を探すなど、占察法と關連していた。五台山事蹟の中で、觀音(東台)と地藏(南台)菩薩は西台(無量壽)と北台(釋迦佛)、中台(文殊菩薩)の仏尊とは違い、別に住処地が決められていた。五台山の金剛社とは別途に地藏住処信仰が根付いていたところは、宝蓋山の石台庵であった。石台庵は金色の豚の變わり身の地藏菩薩の登場により、地藏道場となった。現在、宝蓋山の深源寺にある石造地藏菩薩坐像は高麗(後期)に製作されたことが推測されているが、その信仰の背景には新羅時代を逆上り、五台山南台金剛社の結社ととても關係が深い。宝蓋山の地藏住處信仰の定着過程に五台山事跡に關わる普賢菩薩が關與していたようだ。宝蓋山の石台庵に登場する豚は、地藏菩薩の変化神であったが、その說話の中に普賢菩薩と智通で代表される義湘系の華嚴僧の姿も見受けることができる。金色の豚は、豚を重視する高句麗の伝統と繫シがっており、そのような認識は作帝建の說話にも登場する。石台庵は弓裔泰封の管轄下にあった場所だった。弓裔の弥勒信仰は觀音と弥陀を共に受けたが、真表は地藏、弥勒を信仰した。石台庵の地藏信仰と弓裔の弥勒信仰はお互いに結合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弓裔の勢力下にあった宝蓋山の王權集安と關連する說話が繫がるには問題があり、それにより石台庵の說話は弓裔の死後、設立され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そして、地藏住處信仰の定着点には、高麗後期の文日と中悅、閔漬も大きな役割を果たした。その結果、宝蓋山の地藏道場は今でも息づいてい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참고문헌 (23)
- "삼국유사", ~
- "삼국사기", ~
- "海東高僧傳", ~
- "동국이상국집", ~
- "동문선", ~
- "조선사찰사료", ~
- "今昔物語集", ~
- "入唐求法巡禮行記", ~
- "佛祖歷代通載", ~
- "旨歸章圓通抄", ~
- "법화영험전", ~
- "조선불교통사", ~
- "한국금석전문", ~
- "大方廣佛華嚴經", ~
- "占察善惡業報經", ~
- 조명기, "신라불교의 이념과 역사" (1962), 신태양사
- 이기백, "신라사상사연구" (1986), 일조각
- 월류산 영명사, "현대사회에 있어서 지장신앙의 재조명", ~ (1991)
- 신종원, "신라초기불교사연구" (1992), 민족사
- 불교영상회보사, "肉身菩薩地藏法師" (1993), 불교영상회보사
- 김영미, "신라불교사상사연구" (1994), 민족사
- 김두진, "의상-그의 생애와 화엄사상-" (1995), 민음사
- 최주광, "구화산 지장성지와 동아시아의 지장신앙" (2001), 월류산 영명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