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建書院的崇祀 一以朱熹考亭書院為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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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宋代以朱熹建阳考亭书院为代表的福建书院, 开创了配祀孔门四大弟子, 和从祀本学派先贤的先河。朱熹书院崇祀的目的, 是使其门人从这些先圣先贤的身上吸取教益, 受到文化、道德的熏陶。同时, 使儒家的道统学说得到生动活泼的、立体的体现, 从而使门人容易接受, 取得比讲学更好的效果。经过历代书院崇祀的传承, 福建书院形成了一套完整的祭礼仪式。 福建书院的文曲星崇拜, 则是明清时期教育、文化和官场所共有的一种畸形的价值取向, 是由人性中共有的一种逐利行为被无限放大的结果。这既是一种悲哀, 也是一种无奈。
Abstract
孔子를 존경하여 제사지내고 先聖先師를 숭배하여 제사지내는 것은 봉건사회에서 官學이든 私學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통례였다. 복건지역 宋代의 서원은 이전에 비하여 두 가지를 최초로 거행하였다. 즉 孔聖을 제사지내는 외에 또 孔子의 4대 제자 즉 ‘四配’와 학파의 선현을 제사지내는 창거를 열었다. 이를 시작한 사람은 바로 주희였다. 淳熙6年(1179), 주희가 南康知軍을 맡고 있을 때, 江州에다 濂溪祠를 세워 郡學으로 하고 周敦頣를 主祀하고 二程은 配祀하였는데 이는 전국에서 자기학파의 선현을 제사지내는 효시가 되었다. 紹熙5年(1194), 주희는 또 이 방법을 자기가 창설한 建陽考亭滄洲精舍에 도입하였다. 그는 釋菜古禮를 채용하여 『滄洲精舍釋菜儀』와 『滄洲精舍告先聖文』을 저술하여 孔聖은 主祀하고 顔淵·曾參·子思·孟子는 配祀하였다. 때문에 주희이후, 서원에서 孔聖과 四配를 제사지내는 것은 거의 법칙으로 되었다. 주희가 서원에서 제사를 거행하는 목적은 그 문하의 제자들로 하여금 선성선현한테서 교훈과 이익을 흡수하고 문화와 도덕의 훈도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유가의 도통 학설을 체현하여 문인들로 하여금 쉽게 학업을 전수받고 강학보다 더욱 좋은 효과를 취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제사를 통하여 성인들이 전수하는 계보와 儒家 正統의 정수와 전승관계를 문하 제자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주희가 서원을 창설한 宗旨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주희는 『白鹿洞書院揭示』에서 교학의 목적과 방법을 제출하였다. 이 글을 통해 주희는 서원에서 거행하는 선성선현에 대한 제사를 통해 여러 제자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는 유효한 방법 중의 하나로 삼았다. 그 외 각지의 書院에서는 文昌君을 제사지냈다. 주희의 관점으로 보면 서원은 본래 제자들을 교도하여 의리를 학습하게 하는 곳이지 공명·이록을 추구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후, 서원의 전개과정은 궁극적으로 그의 생각대로 나가지 못했다. 명·청이후, 대부분의 서원은 과거의 부속물이 되었다. 이는 명·청시기 교육·문화와 官場 등에서 모두 공유한 일종의 기형적인 가치 취향이었다. 이는 사람의 인성가운데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무한히 확대된 결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