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遺事』 皇龍寺九層塔條에 대한 재검토와 阿非의 출자
『三國遺事』皇龍寺九層塔条についての見直しと阿非の出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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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三國遺事』 皇龍寺九層塔條에는 신라가 황룡사구층탑을 세우기 위하여 백제에造塔技術者를 요청하였고, 이에 백제가 아비지라는 工匠을 신라에 파견하여 탑을완성시켜주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러나 그 배경이 되는 640년대의 양국 관계는백제의 신라에 대한 波狀공격으로 그 어느 때 보다도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의 백제가 황룡사구층탑 건립을 위하여 신라에 工匠아비지를파견해 주었다는 황룡사구층탑조의 내용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三國遺事』 황룡사구층탑조에는 곳곳에 설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또한일부에서는 고려 초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조목 중 탑의 연기와 관련된 부분의 서술은 고려 초에 성립된 설화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백제의 아비지 파견 역시도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적 요소 중 하나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 같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의 기록에서와같은 ‘大匠百濟阿非’라는 문구는 “大匠의 직을 맡은 백제인 아비”라는 의미이며, 그는 백제 중앙에서 활동하다가 백제 정계의 정치적 혼란을 피하여 신라로 망명한匠人으로 추정된다.
Abstract
『三國遺事』皇龍寺九層塔条には新羅が皇龍寺塔を建てるために百済の造塔技术者を要請して、それで阿非知という工匠が新羅へ派遣されて塔を完成したということが伝えられる。しかし、その背景となる640年代の両国関係は新羅に対する百済の波状攻撃でこれまでにないほどに深刻な葛藤を経験していた時期だった。故に、当時の百済が皇龍寺九層塔の建立のために新羅へ阿非知を派遣したということは現実性の欠ける内容である。『三國遺事』皇龍寺九層塔条には、あちこちに説話的な要素が加味されており、また一部では高麗初期に対する認識が投影されていることもある。そして、この条目の中で塔の緣起に関する部分の記述は、高麗初期に成立された説話を反映したことと考えられる。又、百済の阿非知の派遣もやはり物語に劇的な効果を高めるために、後代から作られた説話的な要素の一つであると判断される。そして、このような物語のモチーフになった、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紀の記録のような『大匠百濟阿非』という言葉は、『大匠の職を引き受けた百済人、阿非』という意味で、彼は百済の中央で活動してから、百済の政界から政治的な混乱を避けるために、新羅に亡命した匠人と推定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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