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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쾌빈리 郭召史墓의 기초적 검토

Basic Review Of Goryeong Koebinri Kawk-Joi'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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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령 쾌빈리 산23-4번지 일원에 위치했던 郭召史墓는 조사과정에서 우연히 확인되었다. 郭召史墓는 회곽묘 조사사례 가운데 하나로 마무리될 뻔했으나 ‘회곽’ 속성과 銘旌(免賤海南郭召史之柩)은 새로운 사실을 추론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郭召史墓의 ‘회곽’ 속성을 분석하여 규모는 양반 계층 회곽묘에 비견될 정도였고 회벽은 통벽쌓기 방식으로 축조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郭召史의 신분이 최상층은 아닐지라도 양반 계층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유추해 보았다. 다만 명정은 郭召史의 신분에 대해 또다른 내용을 알려주는데 ‘免賤’은 郭召史가 상전에 의해 사노비에서 해방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하층의 여성을 지칭했던 ‘召史’는 늦어도 18세기에는 사대부의 첩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郭召史가 상전의 첩이 되었음을 짐작케 해준다. 즉 郭召史는 양반 계층의 첩이 되면서 천층에서 해방될 수 있었으나 양반 계층으로의 진입은 어려웠고 결국 첩이 지녔던 신분적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였다.

Abstract

Kwak-Joi's tomb, located at mountain 23-4, Goryeong, Koenbinri, was accidentally confirmed during the investigation. Kwak-Joi's tomb almost ended in one of the cases of LSMB tomb investigation. However, the attributes and definitions of the ‘LSMB’ attribute and Myeong-jung(The Deceased name flag) clues to infer new facts. The size of the ‘LSMB’ attribute was similar to that of the Yangban class. And it was found that the lime wall was built by building the whole wall. Through this, it was inferred that Kwak-Joi's status may be included in the Yangban class even if it is not the top. However, Myeong-jeong tells another story about Kwak- Joi's status. ‘Myeon-cheon(freeman out of lowborn class)’ is a person who was dismissed from the Novi by the owner. The term ‘Joi’, which referred to the lower class women, was extended to the term concubine of the Yangban class at the latest in the 18th century. This suggests that Kwak-Joi became the concubine of the owner. In other words, Kwak-Joi could be freed from the people as he became a concubine of the Yangban class. But it was difficult to enter the Yangban class. In the end, the identity limit of the concubine was not over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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