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연화문과 가야 불교
The lotus flower patterns and Buddhism of G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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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는 가야에는 과연 불교가 존재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던지면서 출발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기존의 문헌중심연구에서 벗어나 연화문이라는 실물자료를 기준으로 가야 불교를 추적하였다. 가야 연화문은 현존하는 수량은 적지만 다양한 형태를 보일 뿐만 아니라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사례들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일차적으로 유형분류를 통한 연화문의 변화상과 연대를 추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형식분류 결과 가야 연화문은 총 6가지로 구분되었다. 연판의 형태는 단판, 복판, 중판이 모두 확인되었으며 판단은 뾰족한 형태가 둥근 예보다 많은 수를 차지하였다. 능선 혹은 능각의장식유무와 자방부의 유무는 반반을 차지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가야 연화문에 대한 연대는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의 기존 연대를 활용한 방법과 유형분류를 기초로 한 방법으로 나누어 추적하였다. 연판의 형태는 5세기 후반에는 단판과 복판이, 6세기에는 중판이 확인되었다. 판단은 뾰족한 형태가 시기를 막론하고 유행하였다. 능선, 능각 등의 장식과 연자배치는 시기적인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유적의 연대가 규명되지 않은 연화문은 모두 수막새에 표현된 것이었다. 이에 수막새의 제작기법과 동반 출토된 암키와와의 비교분석도 참고로 하여 연대를 추정하였다. 전 대가야궁성지에서 지표 채집된 연화문 수막새는 단판 능선의 연판형태, 수키와被覆接合法, 고식 암키와 조와술을 통해 6세기대 대가야 멸망 이전시기로 추정하였다. 고령 지산리일대에서출토된 연화문수막새 중 일부 유형은 흥륜사 창건와와 문양, 제작기법면에서 유사성이 발견되어 6세기대 대가야 멸망 이전시기로 편년하였다. 일반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연화문은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가야 연화문과 불교와의 상관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연화문양의 계통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문헌기록과의 결부를통해 가야에 불교가 존재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가야 연화문양은 5세기 후반에는 고구려, 남조와의 관련성이 엿보였으며, 6세기로 접어들면 백제, 신라와의 영향관계가 확인되었다. 현존하는 가야 연화문은 그 수량은 적지만 기원처와 계통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가야는 5세기 후반 중국 남조와의 직접적인 외교관계를 진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오늘날까지 남조적인 요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도항리 8호분과 송림리 가마터의 연화문은 남조와의 교류를 시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고아동벽화 속 연화문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동일하게 불교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고령에서 발견된 연화문수막새 역시 당시 중국, 삼국과 동일하게 불교적인 내용을 가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추론은 가야인들이 불교를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가야인들의 불교인식에 대한 근거로는 『三國遺事』기록 속 452년 금관가야 왕후사의 존재와 월광태자의 명칭에서 확인되는 불교식 명칭, 6세기 초중반 백제가 불교를 외교정책에 적극적으로이용한 사실을 제시하였다.
Abstract
This article begins by asking the question whether Buddhism existed in the Kingdom of Gaya. I traced Gaya’s brand of Buddhism based on real materials, i.e. lotus flower patterns, rather than engaging in research focusing on existing literature. I compared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China with those of the Three Kingdoms on the Korean Peninsula (Silla, Baekje, and Koguryeo), using historic sites and relics of Gaya associated with them as basic materials. Although few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remain today, they display a wide range of shapes, and there are many whose periods have not yet been identified. Thus, I engaged in the work of estimating the period of the remaining patterns and how they changed over time by classifying them into types. Thus, the remaining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were divided into six types. As regards their shapes, there are single, double, and triple petals, with pointed petals outnumbering round-shaped ones. About half of them display decorative petal lines/angles or ovaries, while the other half do not. I traced the periods of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by using information on the sites from which they were unearthed and a method based on classification of their types. Thus, No. M3 Tomb in Okjeon, Hapcheon and No. 8 Tomb in Dohang-ri, Haman are said to date back to the late fifth century; No.2 Kiln in Songrim-ri, Goryeong and the one in 158-2 Goa-ri, Goryeong to the early sixth century; and the tomb with murals in Goa-dong to the mid-sixth century. As for the lotus petals, single/plural petals were prevalent in the late fifth century and double petals in the sixth century. Pointed petals were in fashion in all the periods. However, I could not confirm the connection between decorative lines/angles pips and the periods. As it was impossible to determine the periods of the lotus flower patterns made on convex roof-end tiles, they were estimated by comparing them with the concave roof-end tiles unearthed together with them and examining their production techniques. The lotus flower patterns made on the convex roof-end tiles collected from the sites of Dae Gaya royal palaces were estimated to date back to the period preceding the fall of the kingdom in the sixth century based on the shape of decorative lines on the single petals, the way convex roof-end _89 tiles were joined to their concave counterparts, and the way concave roof-end tiles were made. Some of the lotus flower patterns made on the convex roof-end tiles unearthed from Jisan-ri, Goryeong display similarities with those on the original roof tiles of Heungryunsa Temple in terms of the patterns themselves and the production techniques. Thus, they were also estimated to date back to the period preceding the fall of Dae Gaya in the sixth century. I surmise that the lotus flower patterns found in East Asia are associated with Buddhism, and also that the lotus flower patterns made in China from the late fifth to the mid-sixth century and those of the Three Kingdoms on the Korean Peninsula - when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were made - are directly linked to Buddhism. This article also looks at how lotus flower patterns developed in order to ascertain the interrelationships between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and Buddhism, and whether Buddhism existed in Gaya, with the help of the relevant literature.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are thought to have been associated with Goguryeo and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in the late fifth century and with Baekje and Silla by the early sixth century. Only a few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remain, but they appear to have derived from diverse sources and systems. Gaya was engaged in a direct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the Southern Dynasties of China in the late fifth century, yet the writer could not identify any factors associated with them in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Gaya. In this sense, the lotus flower patterns found in No.8 Tomb in Dohang-ri and the site of a kiln in Songrim-ri can be said to be important materials. It is thought that the lotus flower patterns of the murals in Goa-dong include certain Buddhist characteristics, as is the case with the murals of Koguryeo. It is also thought that the lotus flower patterns on the convex roof-end tiles found in Goryeong display characteristics related with Buddhism. I conclude that this may be possible as the people of Gaya were deeply associated with Buddhism. Evidence of the Gaya people’s association with Buddhism includes the existence of Wanghusa Temple(왕후사) of Geumgwan Gaya in 452, as recorded in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the name Crown Prince Wolgwang(월광태자), which is a Buddhist style of name, and Baekje’s positive use of Buddhism in its diplomacy in the early and mid-six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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