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고관리의 변화
The Transition in the Management of History Archives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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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은 건국초기부터 실록을 편찬하였고, 사적분장지책을 실시하며 관리하였다. 그 결과 7년 동안 진행된 임진왜란에서도 실록을 보존하였고, 실록 편찬의 목적 중의 하나였던 후세의 귀감과 교훈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조선전기에 설치된 네 곳의 사고 중 세 곳의 사고가 일본군의 북상로에 있었다. 이로 인해 임진왜란 당시 세 곳의 실록은 소실되었지만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내 실록 보존이라는 최종적인 목적은 달성했다. 아쉬운 것은 전란에 대비한 보존대책이 보다 철저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전주사고의 경우에서 보듯이 실록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그에 따른 조치들, 그리고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려는 책임자의 존재여부가 더욱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한다. 전란이 계속되는 동안 유일본으로 남는 실록의 보존을 위해서 조선정부는 노심초사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깊은 산의 큰 사찰에 안치하고, 승려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것은 고려시대 해인사에 실록을 보관하던 전통을 잇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억불을 취해 온 조선이 불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유화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즉,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서, 호국불교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불자들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이들에게 믿음과 예우를 보인 사례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임진왜란 이후 사고관리에 있어서 승려들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활용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Abstract
The Joseon government compiled a history of each reign since the outset, and placed the annals to special repositories (Sago) in four widely separated parts of the country. The annals survived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to 1598, thus achieving the goal of the compilation as a mirror, or exemplar, for future governments. Unfortunately, 3 of 4 repositories had been located at the strategic corners by way of that Japanese army advanced northward. Thus all the volumes stored in the three history archives were reduced to ashes. Only the annals of Jeonju sago survived the war. If the government thoroughly prepared for the worst, the damages would be reduced. In this respect, the instance of Jeonju sago showed the fact that the will and the endeavors of keeping the annals intact, and the persons in charge themselves are most important. The government was very worried about storing the annals of Jeonju during the war, so established five separate history archives deep in the mountains to store copies of the annals after the Imjin war, and kept them under the guard of monks near temples. It might come from the traditional practice of Koryo dynasty when the annals were kept in Haeinsa temple. On the other hand, there is room for another interpretation. Joseon might stand back a step from its previous tough stand against Buddhism. The government recognized the merits of monks under the national crisis, and treated them with honorable respect. This in turn led to the use of monks for the surveillance of history archives, no the least of the exclusion of monks, after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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