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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읍지湖南邑誌의 고려시대안렴사按廉使 명단 검토

An Examination of a List of Anryeomsa duringGoryeo Dynasty Recorded in ‘Honameup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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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안렴사는 안찰사‧제찰사‧도관찰출척사 등으로 직임이 변천을 하였는데, 현재 그 명단이 온전히 전하고 있지는 않다. 이 글은 고려시대 안렴사 명단의 복원의 일환으로, 1790년대 간행된 『호남읍지』에 전하는 공민왕 7년부터 공양왕 4년까지 기재된 53인의 명단이 믿을 만한지를 검토해 본 것이다. 53인 가운데 대략 43%인 23인을 다른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호남읍지』에 누락됐던 3인의 안렴사를 더 찾을 수가 있었다. 확인되는 명단 가운데는 이름의 오류가 8건 정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정도로 판단된다. 『호남읍지』에 기재된 공민왕 21년 춘하번으로 파견된 윤진의 경우에는 안렴사가 아닌 안집사로 직임이 기재되어 있어, 의문을 갖게 한다. 안집사가 안렴사와 유사한 임무를 수행했다거나 충청도지역에도 안집사가 파견된 사례가 있으며, 공민왕 4년과 우왕 6년에 경상도에 파견된 안렴사의 직임에 ‘안집’의 임무를 겸한 사실이 있음을 고려하면, 안집사로 기재된 것도 오류로 볼 수는 없다. 공민왕 21년 춘하번에 윤진이 안렴사가 아닌 안집사로 기재된 이유는 경인년 이후 지속된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해안가의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져 유망한 백성들이 많았던 것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고려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들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안집의 일이 급선무였고 그로 인해 안집사로 기재된 것이 아닌가 한다.

Abstract

In this paper, we organized a list of anryeomsa in Jeolla Province as listed in the book ‘Honameupji (A record of Honam regional affairs).’ Among 53 listed people between the 7th year of King Gongmin's reign and the 4th year of King Gongyang, records of 23 people, or about 43%, were found in other documents as well. And, in other documents, records on three more anryeomsa were found that were left out of ‘Honameupji.’ Among the records, eight names appeared differently, probably due to a difference in spelling method. In ‘Honameupji,’ Yun Jin, who was dispatched as chunhabeon in the 21st year of King Gongmin's reign, is listed as ‘anjipsa,’ not ‘anryeomsa.’ This is probably not an error, considering that the two positions involved similar tasks, and there are cases of dispatching anjipsa in Chungcheong Province, and that anryeomsa that served in Gyeongsang Province between the 4th year of King Gongmin and the 6th year of King Wu also carried out the role of anjipsa. The reason that Yun Jin was listed as anjipsa is because many people from the coastal areas had been wandering around since the 2nd year of King Chungjeong’s reign amid continued invasion of the Japanese. For the Goryo royal palace, it was an urgent task to make these people settle, and presumably, officials were dispatched as anjipsa for this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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