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의 한 의미: 백용성을 중심으로
The meaning of ‘Independence’in the era of the Japan colonial period: through the Baek Yong Seong’s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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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최근 항일독립운동가의 인상으로 해석되고 있는 백용성의 행적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의 ‘독립’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백용성에 대해 현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상은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반공-반일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에게 독립의 의미는 다양했고, 많은 경우 일본이라는추상적인 국가를 상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는 정치 경제적 집권 권력층과 그 구조였다. 유사종교의 종교인들 역시사회고(社會苦)라는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독립을 생각했다. 백용성을 항일독립투사나 3·1 독립선언의 이면적 주도자 내지는 막후 실력자로 자리매김하려는 태도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반공-반일의 패러다임에서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한 독립은, 현재의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항일의식보다 그 의미가 더욱 전면적이고 본질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독립관은 당시의 사회고를 염두에 둔 포괄적인 것이었다. 백용성의 독립의식은 하부구조의 독립을 바탕으로 한 상부구조의 독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이끈 대각교 운동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종교의독립이었으며, 백성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던 기성 불교로부터의 독립이었다. 그는 항일투사의 이미지보다는, 근대시기의 불교계가 안고 있었던 사회윤리적숙제를 밑바닥에서부터 차분하고 주도면밀하게 풀어내려고 했던 인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In this study, I had some reinterpretations of the meaning of ‘Independence’ in the era of the Japan colonial period. Baek Yong Seongwho was widely known a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and the subject of anti-Japan Independence Movement, especially the March 1st Declaration of Independence. But this strong impression result from the contemporary Korean`s Perception of him. That is just the paradigm of anti-Japanese and anti-communism. The meaning of ‘Independence’was diverse in the era of the Japan colonial period. In many cases, it did not target at an abstract nation that was called ‘Japan’. Independence fighters at that time had a critical mind to political economic power. Their ‘Independence’was independent from the antiimperialism. The people of the so-called pseudo-religions, including Baek Yong Seong, have an ‘Independence’in mind with a sense of social suffering. Recently the image of Baek Yong Seong is confirmed in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and ulterior leader of the March 1st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his attitude bespeaks an attitude toward Koreans the paradigm of anti-Japanese and anti-communism. But the Independence what he intended is not dumb down to ‘anti-Japanese’. His ideas about Independence was being considered from all sides. It ranges over social suffering of the day. Baek Yong Seong’s ‘Independence’is one of berbau that based on Unterbau. The DaegaggyoMovement is independent of the religion from the political economic power and established Korean Buddhism that was ignored by the contemporaries. He was somewhat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But he was a leading figure to plan carefully the problem of Buddhist social eth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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