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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항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 형성

Formation of Relationships between Korean and Japanese during the Opening of the Port of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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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는 개항기 부산항을 다양한 문화가 충돌하고 타협하는 ‘섞임(entanglement)의 공간’으로 이해하려는 데서 출발하였다. 개항장은 기존의연구에서 정리한 지배-피지배, 수탈-피수탈의 논리적 구조와 함께 제국주의 세력과 토착세력 사이의 섞임도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먼저 개항장 부산의 공간 변화에 주목하였다. 개항전 초량왜관이라는 고립되고 폐쇄적인 전근대시설이 존재했던 부산항은개항과 함께 전관거류지가 설치되었다. 통제의 상징인 담장과 대문이 철폐되었다. 일본인만의 배타적인 공간이 아니라 조선인도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섞임의 공간으로 변하였다. 개항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섞임을 상거래 방식에서 확인하였다. 개항기 거래방식은 화폐나 물건을 먼저 건네고 반대급부를 나중에 받는 선대제 형식의 외상거래였다. 이러한 방식은 상호 신용거래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왜관이 있던 시기부터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요소였다. 개항장 내 섞임은 문화 분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거류지 내 일본인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이 이루어지고, 조선인 교사가 채용되고, 조선의 고전소설이 교재로 사용되었다. 한편 일본인 학교에 조선인의 입학도 허용되었다. 문화 분야의 섞임은 부산에서 생활하던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인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일본인 부자였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는 식민자 일본인과 다름없는 수탈을 추구하는 모습을보이기도 하지만, 부산에서 함께 살아가는 조선인과의 신뢰를 강조하기도하였다.

Abstract

This study began with trying to understand during the opening of the Port of Busan as a ‘Space of Entanglement' that diverse cultures clash and compromise. The open port was a space where the logical structures of dominant-dominated class and exploiting-exploited class, which were organized in the existing studies,as well as the entanglement between the imperialist power and indigenous power existed. First of all, we focused on the spatial variance of the open port, Busan, in order to analyze this. Before the opening, there was the isolated and exclusive pre-modern facility named Choryang Waegwan(草梁倭館) at the Port of Busan. However, the exclusive concession was established when the Port of Busan opened. The fences and gate, the symbol of control, were removed. The Port of Busan changed from the exclusive space just for Japanese to the Space of Entanglement where Korean had free access to. The entanglement between Korean and Japanese at the open port was confirmed by the method of business transactions. The transaction method during the opening was the putting-out system of credit transaction to hand over money or commercial products first and to receive the counter performance later. This method was based on mutual credit transactions, and the traditional element that had been preserved from the days when Waegwan existed. The entanglement inside the open port can be confirmed in cultural aspects. Korean language was taught in the Japanese school on the concession. At the school,Korean teacher was employed and the Korean classic novel was used as the teaching material. On the other hand, Korean students were also admitted to the Japanese school. The entanglement in cultural aspects can be confirmed in the awareness of Korean by Japanese who lived in Busan. Hazama Husataro[迫間房太郞], a representative Japanese capitalist of Busan, pursued an exploitation just as other Japanese colonists. However, he emphasized trust with the Korean who lived together in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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