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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초기 漢城府에서 나타난 삶의 경계와 계층적 변화-戶籍에 기재된 平民 집단을 중심으로-

Boundary of life and changes of classes in early modern Hanseongbu -commoner class listed in the family reg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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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 연구는 근대 초기 한성부 호주들이 직업과 관련 없는 평민을, 자신의 직업으로 호적에 다수 기재했던 사례에서 출발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성부 광무호적을 활용하여, 근대 초기 도시 공간 안에서 나타났던 평민의 존재 양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근대 초기 한성부의 평민 집단에 대한 이해와 그들에 대한 역사적 개념을 구체화하려 하였다. 한성부는 왕의 거주지이며 수도로서 국가 시설과 중앙 관청이 집중되었던 지역이었다. 이러한 지역 특성으로 인해서, 한성부의 전체 거주민 중에서 전․현직 관료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관료 집단은 자신들의 정치적 특권을 통해서 한성부의 상위 계층으로 역할 함으로써, 한성부의 지역사회는 직업과 관련하여 관직자와 非관직자에 대한 사회적 구별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평민은 ‘관직을 갖고 있지 않는 자’를 칭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한성부 거주민에게 내면화되면서, 다른 지역과 달리 한성부의 호주 중에서 자신의 직업을 호적에 평민으로 기재하는 사례가 다수 나타났다고 보았다. 또한 본 연구는 당시 평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개념을 다각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 직업 항목에 본인을 평민으로 기재하였던 937명 호주의 개인 정보와 가족 내용을 분석하였다. 이에 호적에 기재된 평민 호주와 가족 내용을 父의 직업, 기구․고용의 동거 상황, 가택과 가족의 규모 및 유형 등으로 접근하였다. 그 과정에서 평민은 사회경제적으로 상위 계층이었던 城內의 관료와 일부 상인 그리고 하위 계층이었던 城外의 농민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집단성을 보였다. 결국, 당시 한성부에서 평민의 사회적 인식과 개념은 ‘관직을 갖고 있지 않은 자’ 이외에,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갖지 않은 보통의 그리고 평범한 자’를 동시에 의미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민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개념으로 인해서, 한성부 호적의 직업 항목에 평민이 다수 기재되는 결과로 나타났다. 근대 초기 한성부에 존재했던 일부 집단이, 자신을 정치적 특권 그리고 사회경제적 기득권층에서 벗어난 가장 대중적이고 평범한 서민 집단으로 규정하였고, 이러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평민으로 구체화 시켰으며, 평민은 당시 한성부에서 다른 집단과 공존하면서 그들만의 독자적인 존재 방식과 특성을 보이는 계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Abstract

This study was initiated from a critical mind why multiple inhabitants of early modern Hanseongbu had been listed collectively in the occupation section of the family register as commoner that was not related to the occupation. Based on this perspective, it was aimed to understand the commoner’s group that had lived in early modern Hanseongbu and to materialize their historical concept by reviewing the perception on the commoner in the society within the urban space of early modern Hanseongbu as well as analyzing their features of living. Hanseongbu as the king’s residence and capital was the location where national and governmental facilities were concentrated, hence, previous or current government officials shared the most among the total inhabitants in Hanseongbu due to the territorial characteristics. Government officials played roles of upper class in Hanseongbu in the socioeconomic perspective, which assumed the emphasis of social discrimination between officials and non-officials more in the occupation than the other locations. In this situation, commoners at that time were perceived as those who did not have public service jobs, therefore, it is considered that commoners without relation of occupation were listed in the occupation section of the family register in Hanseongbu, unlike other territories. Then, statistical analysis was performed with personal information and family relations of 937 family heads who were listed as commoners in the occupation section of the family register to analyze their living styles and identity at that time. When the commoner family heads and their family relations listed in the family register were analyzed by fathers’ occupation, cohabitation status with other family and employees, size and types of houses and families, and so on, commoners showed the remarkable difference in the sociality from government officials that were upper class and some merchants in Hanseongbu and farmers out of Hanseongbu that were lower class. They represented as the most popular and universal commoners’ group in early modern Hanseongbu, socioeconomically and became the unique class to show their own living styles upon coexisting with multiple classes and gro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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