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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代 江南都市의 商工業行會와 度量衡問題

Guilds, Weights and Measures of Jiangnan Cities in the Late Imperial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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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고의 지역적 고찰대상으로 하엿던 강남대도시는 경제의 최선진지대로 간주되는 곳이고, 많은 외래객상이나 노동자들이 체류하고 있었다. 淸末의 上海 등의 강남도시의 여러 도시를 보면, 당시에 사용되고 있던 도량형은 종류도 극히 다양하고, 심지어는 같은 품목조차 계량하던 도량형기가 다르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혼란상태는 아니었으며, 각 도시에는 표준이라고 할 만한 도량형이 있었고, 또한 도량형의 혼란을 막기 위한 관리의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청대 강남도시에서 이러한 도량형관리의 시도를 시기별로 보면, 아편전쟁 이전, 즉 19세기 전반에는 도량형을 둘러싼 분쟁에 즈음하여 사람들은 우선 지방관에 소송을 하고, 이에 관이 직접 개입을 하며 도량형의 설정에서도 관이 주도권을 갖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비하여 19세기 후반에는 관이 중재적인 역할이 약화되었고 민간의 조직화를 통하여 도량형 관리노력이 표면에 등장하였다. 이 조직화의 외적 형식으로는 會館과 公所였고, 내용으로는 도량형이나 가격 등을 통일시키기 위한 行規였다. 즉 도량형의 분산에 나타난 외부의 낮은 신뢰도라는 문제에 대해서, 단체 형성을 통하여 그 내부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직화는 도량형에 관한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하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조직해서 도량형의 기준을 일치시켜, ‘역선택(逆選擇)’ 즉 왜곡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될 수 있는 한 회피하려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민간의 힘이 확대되어 갔던 배경에는, 19세기 후반, 태평천국의 난을 통하여 관의 규제력이 감퇴하였던 것과 함께, 18세기를 통하여 이루어졌던 활발한 상업활동을 통한 상공업자의 네트워크와 상업관행의 축적이 이루어졌다는 것, 또한 19세기 후반의 개항과 수반한 급격한 경쟁격화와 시장질서의 위기에 즈음하여, 그들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결집을 도모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이주지라는 불안정한 ‘바다(海)’가운데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동향조직이나 동업조직(‘섬’)을 만들어가면서 숙지집단화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숙지집단화의 움직임 가운데, 우선 눈에 뜨이는 것은 다양한 경제행위 가운데 불가결한 요소, 예를 들면, 도량형기 등이나 화폐나 가격 등에 관해서 서로 합의를 형성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이 합의의 과정은 ‘공의’라는 형식이 필수불가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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