丁茶山의 朱子 『論語集註』 批判 (5)丁茶山의 朱子 『論語集註』 批判 (5)
Jung Da-san(丁茶山)'s criticism of Zhu-zi(朱子) 『Lunyujizhu(論語集註)』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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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茶山의 나이 52세 때인 1813년에 완성된 論語古今注는 실로 二千年 論語學史에 있어서 획시대적인 저작이 아닐 수 없다. 당세와 후세에 끼친 영향력에 있어서는 주자의 논어집주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탐구의 깊이나 철저한 고증력에 있어서는 논어집주의 수준을 휠씬 넘어선 大作이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과 검증은 茶山 論語學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하고 가치를 밝히는데 있어 굳건한 토대를 만들어 줄 것이다. 본고에서는 質疑 49에서 61까지에 대해 검토하였는데, 이 가운데 다산의 創見이 보이는 몇 조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丘之禱久矣.(7-35)의 “禱”가 士喪禮의 의식 가운데 하나인 “行禱五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주자 설에 대해, 다산은 그 의식은 사람이 운명한 뒤에 행하는 것이므로 아직 산 사람인 공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다산이 士喪禮에서의 “疾病”을 “殞命”의 의미로 보기 때문인데 이는 고금에 유례 없는 다산만의 독특한 주장이다. “舜有臣五人而天下治.…唐虞之際, 於斯爲盛.”(8-20)節의 이해에 있어 주자는 요순시대에 인재가 가장 많았고 주대는 그 다음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인재의 성함은 요순시대 보다 주대가 더 성하였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공자의 본뜻이라 생각하였다. 다산이 이런 해석을 한 데에는 “唐虞之際, 於斯爲盛.”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다산은 唐 虞를 실제 인물로 보는 여타의 주석가 들과는 달리 ‘훌륭한 임금’과 ‘현명한 신하’의 비유로 보았다. 그리하여 다산은 “唐虞之際, 於斯爲盛.”을 “聖主와 賢臣이 서로 만나는 시기가 주나라 무왕 때 가장 성했다”라고 풀이하였다. “禹, 吾無間然矣.”(8-21)에 대해 주자는 “間은 罅隙, 즉 틈이다. 그 틈을 지적하여 비난함을 이름이다.” 즉, “우 임금에 대해 나로서는 빈틈을 지적하여 비난할 데가 없다.”는 의미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間’의 훈고에 있어서는 주자와 마찬가지로 ‘간극’ 즉 ‘틈’으로 보았지만, 주자 뿐 아니라 역대의 모든 주석가 들과는 다른 독특한 설을 제시했다. 다산은 “吾無間然”을 공자가 우 임금을 ‘흡연히 애모하여 한치의 틈도 없다’ 라는 뜻으로 보았다. 다산은 이 ‘間’의 주체를 공자 자신으로 본 것이다. 이는 주자가 間을 우 임금 자신에 있는 ‘빈틈’이나 ‘흠’으로 본 것과는 크게 다르다. 주자는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9-05) 節에 3번이나 보이는 “斯文”을 “斯道”를 대신한 謙辭라고 보았다. 그러나 다산은 겸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주자의 주장대로라면 논어에 보이는 많은 道자 가운데서 바꾸어 불러야 할 부분이 적지 않고 그럴 경우 매우 어색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자 설은 일관성에 문제가 있으며 다산의 문제 제기가 정당하다 할 것이다.
Abstract
Completed by Dasan(茶山) in 1813, the Lunyugujinzhu(論語古今註) is a most intelligent and intensely argued commentary on the Analects. Through a deep speculation and close reading of varied texts from Xianqin(先秦) period to Qing(淸) Dynasty, Dasan demonstrated the hermetic originality of the Analects. Terefore the Lunyugujinzu should be estimated to be a master work far beyond Zhuxi(朱熹)'s Lunyujizhu(論語集註) which still remain the most influential work on the Analects. This paper is a comparative research of Dasan and Zhuxi. It examines the portion of Question from no.49 to no.61 of the Lunyugujinzu and it reveals Dasan's extraordinary interpretive ability. Accordingly this paper definitely contributes to the academic establishment of Dasan studies. Regarding the Analects 8-20, Zhuxi thought that the talented men in the Yaoxun(堯舜) period numbered those in the Zhou(周) Dynasty. In Dasan's view, conversely, Confucius' intent was to show that the Zhou Dynasty was more glorious than the Yaoxun period, because Tangyu(唐虞), a sage-king and a wise minister should be understood figuratively, not historically. Regarding the Analects 8-21, Zhuxi translated that Confucius couldn't find out King Yu's fault at all, on a basis that the letter Jian(間) had the meaning of gap or fault. Meanwhile, Dasan translated differently; Confucius respect King Yu closely without gap or space. Regarding the Analects 9-45, Zhuxi thought Siwen(斯文) as a humble speech of Sidao(斯道). However Dasan found Zhuxi's claim to be unlikely because in the Analects numerous phrases were possibly interpreted that way and, if so, they would be awkward expressi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