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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의 기생조합과 권번 연구

A Study on the Gisaengjohab and Gwonbeon in Dae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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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20세기 전반기에 서울 평양 대구 등 여러 도시에 존재했던 기생조합과 권번은 우리의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본고에서는 이 점에 주목하며 대구지역에 존재했던 기생조합과 권번에 대해 두루 살펴 이 시기의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 살펴본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구지역 권번의 전신(前身)인 경상감영 교방과 대구부 교방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상감영 교방의 기생 정원은 31명이고, 대구부 교방의 기생 정원은 21명이었다. 둘째, 대구기생조합과 달성권번, 대동권번에 대해 살펴보았다. 1. 1910년 5월 무렵 행수기생 출신인 염농산이 중심이 되어 상서정 20번지에 대구기생조합을 설립하였다. 박기홍 등이 선생으로 있었으며, 김추월 김초향 박록주 등 뛰어난 예인들이 배출되었다. 2. 달성권번은 1926년 12월에 설립되었는데,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1944년 무렵에 폐지된 것으로 짐작된다. 염농산이 대표였으며 김록주 신금홍 박지홍 등이 임소향과 박귀희 등 예인들을 배출하여 전통예술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3. 대동권번은 1946년 1월 중순에 동본정 67번지에서 발족하였는데, 회장은 김애산이고, 박지홍, 전명득, 박동진 등이 선생으로 활동하였다. 대동권번은 1948년 10월 15일 무렵 육예회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사라졌다. 셋째, 기생 주변의 군상(群像)들과 기생조합 및 권번에서 활동한 예인들을 통해 대구지역의 기생조합과 권번의 문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1. 기생과 권번과 요리점 사이에는 기생의 시간대(時間代) 문제로 갈등과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으며, 요리점과 인력거부(人力車夫)들 사이에도 분쟁이 있었다. 2. 박기홍을 비롯하여 조학진, 박지홍, 강태홍, 박동진 등이 대구기생조합과 달성권번, 대동권번에서 선생으로 활동하며 예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여성으로는 염농산을 비롯하여 강소춘과 김추월, 김록주, 김초향, 박록주, 신금홍, 임소향, 박귀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대구지역의 전통예술 발전에 기여하였다.

Abstract

In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various cities including Seoul, Pyeongyang, and Daegu had courtesan unions and martial arts schools that greatly contributed to the preservation and transmission of our traditional arts. This paper focuses on the courtesan unions and martial arts schools in the Daegu region and examines them in detail to contribute to a better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arts during this period. The paper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the paper examines the precursor to the Daegu martial arts school, the Gyeongsang Gamyeong school, and the Daegu Bu school. The Gyeongsang Gamyeong school had thirty-one courtesans while the Daegu Bu school had twenty-one. Second, the paper explores the Daegugisaengjohab, Dalseonggwonbeom, and Daedonggwonbeom. In 1910, Yeom Nong-san, a former courtesan, founded the Daegugisaengjohab at 20 Sangseojeong. Park Gi-hong and others were teachers, and outstanding artists such as Kim Chu-wol, Kim Cho-hyang, and Park Rok-ju were produced. Dalseonggwonbeom was founded in December 1926 and was presumed to have been abolished around 1944 when the Pacific War escalated. Yeom Nong-san was the representative, and Kim Rok-joo, Shin Geum-hong, and Park Ji-hong produced outstanding artists such as Im So-hyang and Park Gwi-hee. Daedonggwonbeom was established in mid-January 1946 at 67 Dongbonjeong. Kim Ae-san was the president, and Park Ji-hong, Jeon Myeong-deug, and Park Dong-jin were the teachers. Daedonggwonbeom disappeared when its name was changed to Yukye Club around October 15, 1948. Third, the paper examines the culture of courtesan unions and martial arts schools in the Daegu region through the people around the courtesans and the artists who worked in the unions and schools. There were conflicts and disputes between courtesans and martial artists and between restaurants and rickshaw drivers due to the courtesans’ time constraints. Park Gi-hong, Cho Hak-jin, Park Ji-hong, Kang Tae-hong, and Park Dong-jin, among others, worked as teachers at the Daegu Courtesan Union and Dalseonggwonbeom and Daedonggwonbeom and produced many outstanding artists. Women such as Yeom Nong-san, Kang So-choon, Kim Chu-wol, Kim Rok-joo, Kim Cho-hyang, Park Rok-ju, Sin Geum-hong, Im So-hyang, and Park Gwi-hee are representative examples. All of them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raditional arts in the Daegu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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