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의 제사 담론―人情과 交感의 사례를 중심으로―
Discourse on Ancestral rites on Early Joseon―Focusing on the cases of Empathy and Comm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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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5세기에서 17세기 전반에 이르는, 조선전기는 제사 관련 담론이 활발했던 시기다. 조선 건국의 주체들은 신유학의 정치이념에 의해 가장 먼저 제례의 유교화를 추진하는데, 속례(俗禮)의 많은 부분과 갈등을 일으켜 개혁이 원활하지는 못했다. 이 과정에서 제사의 본질적 의미나 제사의 권력화 문제 등의 다층적인 제사 담론이 형성된다. 여기서는 『가례』와는 다른, 속례의 제사 관행에 주목하여 조선전기 제사 담론의 특징을 밝히고자 했다. 속례의 윤회봉사는 『가례』의 가묘(家廟)와는 달리 제사공간과 봉사자를 특정하지 않았다. 의례 행위에는 의무와 권리가 함께 주어진다고 할 때, 윤회봉사는 그것을 혈연 근속들이 나누어 갖는 의미가 있다. 또 『가례』의 제사가 공동의 조상을 통한 부계친의 조직화를 지향한다면, 속례의 제사는 봉양과 교감 등 망자(亡者)를 향한 의미가 크다. 조선전기 예학자들에 의해 비례(非禮)로 규정된 속례의 고비합설(考妣合設)과 생신제(生辰祭)는 인정과 교감을 추구한 조선전기 제례 정신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자연 감정에 충실한 속례의 제사를 일정부분 인정한 것은 속례의 저항이 컸기 때문인데, 이것이 곧 조선전기 제사 담론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전기 제사 설행의 기록들은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제사를 매개로 유출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제사에 임하는 감정은 망자와의 관계나 망자에 대한 기억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제사 설행자의 성별에 따라 감정의 차이가 컸다. 『가례』와 비교할 때, 조선전기 사람들의 제사 의식은 덜 추상적이고 덜 규범적이었으며 망자(亡者)를 기억하는 방식이 구체적이고 정감적이었다. 제사가 고도의 감정을 요구하는 의례인 점에 주목하여 조선전기 제사 관행을 의미화했다.
Abstract
In the early Joseon, discourse on ancestral rites were active. It contains the reform by Jujagarai (朱子家禮) and the resistance of conventional rituals to it. Joseon which used the Neo-Confucian worldview as a political ideology was the first to promote Confucianization of everyday rituals while excluding conventional rituals. This article attempted to reveal its nature and meaning by paying attention to conventional rituals that resisted Jujagarai. While a conventional rituals considered it important to serve the deceased and interact with the deceased, but Jujagarai differ from each other in that they aimed to organize paternal relatives through common ancestors. This article discussed the meaning of the ritual Gobihapseol [考妣合設] and a ritual to remember the birthday of the deceased[生辰祭]. Through Mukje-ilgi (默齋日記) and Byeongja-ilgi (丙子日記), I looked at the feelings of rituals of people in reality. Compared to Jujagarai it was revealed that their rituals were less normative, and the way they remembered the deceased was specific and emo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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