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老峯 閔鼎重의 정치활동과 경세론

A Study of a Literati Min Jeong-Jung in Late Joseon

0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노봉 민정중(1628~1692)은 조선 효종~숙종 초반 시기에 학자이자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간 관료, 정치가였다. 송준길(宋浚吉)과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었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閔維重)의 형이었다. 민정중의 문집인 『노봉집(老峯集)』이 수 년 전 번역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해제」 외에는 연구가 제출되지 않았다. 개인 – 인물 연구는 삶에 묻어 있는 관계와 구조, 의지의 작용을 살펴보는 역사 연구의 기초라는 점에서 그의 삶을 검토하는 것이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뜻에서 본고는 그의 생평을 아우이자 동료였던 민유중(閔維重), 이들의 스승으로 주로 재야에서 공론을 담당하던 송준길과 송시열, 조정의 동료였던 김수항(金壽恒) 등의 인적 교류 속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노봉집』을 통해 민정중의 정치활동, 민생과 재정을 중심으로 한 경세론에 중심을 두어 검토하였다. 민정중은 반정 이후 태어났고, 사회와 민생, 국가정책의 시대적 과제가 공적으로 드러나 추진되던 시기에조정에 들어왔다. 송준길, 송시열을 스승으로 삼았던 그는 서인 산림계의 정치적, 사상적 영향 아래 있었다. 또한 효종 연간에 호남과 영남 어사, 수어청 종사관으로 그는 행정 능력을 발휘하였다. 함경도 관찰사, 호조판서를 지내던 현종 연간에도 기근과 진휼에 기여할 수 있었다. 갑인예송 이후 굴곡에도 불구하고 좌의정에 올라 기사사화로 귀양을 가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는 내수사 혁파, 공납제 개혁 및 진휼등 재정과 민생 정책의 중심에 있었다. 노양처종모법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재정의 검약을 통한 부세 경감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여, 숙종 후반에 펼쳐진 정책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다.

Abstract

No-Bong, the nickname of Min Jeong-Joong(1628~1692), was a scholar and politician lived in Hyojong~Sookjong reign, Late Joseon. He was a disciple of Song Jun-Gil and Song Si-Yeol who called Sallim(山林), and an uncle of Queen In-Heon(Her father’s elder brother). Inspite of the publication of his anthology, there are no article about No-Bong but a bibliographical explanation. A study of an individual is a basis of historical research and it can spread to the sphere of aspect of the age. In this view I descripted the relationship of the school and its policies in court. Min Jeong-Jung was born after the 1623 Restoration and fronted the national or social tasks to solve. During the King Hyojong reign, he was recruited as an officer, and executed the provincial control of Honam, Yeongnam as a royal emissary. During the King Heonjong reign, He took charge of a provincial governor of Ham-Geong Do and a Minister of Finance & Taxation, and overcame the Great Famine(1670~1671). In the course of the Gap-In Ritual Dispute, he resigned his position and came back as a vice-prime minister after the Keong-Sin Change. He tried to reform the Royal Treasury that appropriated the commons of the people, and the Tribute system. Though he had a concervative opinion on the Nobi system that the child of the feminine commoner and the man Nobi got a commoner strata. However his policies and expriences became models of the late Sookjong reign.

참고문헌 (40)

  1. "광해군일기(중초본, 정초본)", ~
  2. "인조실록", ~
  3. "효종실록", ~
  4. "현종실록", ~
  5. "현종개수실록", ~
  6. "숙종실록", ~
  7. "영조실록", ~
  8. "승정원일기", ~
  9. "비변사등록", ~
  10.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국역 노봉집(老峯集) 1, 2, 3" (2015), 흐름출판사
  11.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국역 문정공유고(文貞公遺稿)"
  12. "栗谷全書", ~
  13. "同春堂集", ~
  14. "宋子大全", ~
  15. "草廬集", ~
  16. "市南集", ~
  17. "文谷集", ~
  18. "陶菴集", ~
  19. "屛溪集", ~
  20. "寒水齋集", ~
  21. "葛庵集", ~
  22. 오수창, "仁祖代 政治勢力의 動向", 한국사론, 13 (1985)
  23. 제임스 스콧, "지배, 그리고 저항의 예술: 은닉 대본" (2020), 후마니타스
  24. 한영우, "李睟光의 學問과 思想", 한국문화, 13 (1992)
  25. 오항녕, "朝鮮 孝宗代 政局의 變動과 그 性格", 태동고전연구, 9 (1993)
  26. 권내현, "숙종대 지방통치론의 전개와 정책운영", 역사와현실, 25 (1997)
  27. 김성우, "17세기의 위기와 숙종대 사회상", 역사와현실, 25 (1997)
  28. 정호훈, "朝鮮後期 政治思想 硏究" (2004), 혜안
  29. 이상식, "조선 肅宗代 君師父一體論의 전개와 왕권강화", 한국사학보, 20 (2005)
  30. 문석윤, "葛庵 李玄逸의 性理說", 민족문화, (29), pp.247~275 (2006), 한국고전번역원
  31. 이정철, "대동법" (2010), 역사비평사
  32. 오항녕, "春秋大義와 禮訟의 기억 - 宋時烈과 魏伯珪 -", 태동고전연구, 27, pp.131~160 (2011), 태동고전연구소
  33. 오항녕,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 (2012), 너머북스
  34. 최주희, "조선후기 재정운영과 시장정책을 둘러싼 중앙정부의 딜레마", 역사와 현실, (94), pp.147~156 (2014), 한국역사연구회
  35. 이정철, "조선시대 사림의 기원과 형성 과정", 조선시대사학보, (73), pp.7~42 (2015), 조선시대사학회
  36. 오항녕, "文谷 金壽恒과 己巳士禍", 한국인물사연구, (25), pp.63~95 (2016), (사)한국인물사연구회
  37. 정다운, "17세기 후반 西人의 咸鏡道 경험과 정치활동:金壽恒과 閔鼎重을 중심으로", 석사, pp.2019
  38. 김준태, "노봉 민정중의 생애와 禮論 연구", 牛溪學報, 38 (2020)
  39. 오항녕, "『맹자(孟子)』 : 민(民)과 국가(國家)의 긴장 - 여민(與民) 경세론(經世論)의 성격 -", 남도문화연구, (41), pp.85~114 (2020), 남도문화연구소[DOI]
  40. 데이비드 그레이버, "부채, 첫 5000년의 역사" (2021), 부글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9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