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한국재정 인식과 재정정리(1904~1907)
Japanese financial advisor Megata Tanetaro's Recognition of Korean finance and fiscal reorganization (1904-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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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의 재정정리는 한국 본고에서는 ‘대한제국’을 약칭하여 ‘한국’으로 쓴다. 재정에 대한 그의 인식과 재정관을 바탕으로 계획되고 실행되었다. 메가타는 부임 전인 1899년 무렵부터 한국재정에 대해 조사ㆍ연구하였고 재정고문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7개월여 동안 재정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용익의 지속적인 저항과 고종의 냉담한 태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본 내각과 하야시 공사의 적극적인 방어로 1905년 5월경 메가타의 재정조사는 마무리될 수 있었다. 재정조사 결과 메가타는 한국의 재정제도를 인정하지 않았고 재정은 없다고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메가타는 한국의 재정을 정리ㆍ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 건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메가타는 화폐제도의 개혁, 세출의 긴축, 세입의 정리를 재정정리로 규정하고 급한 것부터 차례로 실시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화폐제도 개혁의 핵심은 백동화의 정리에 있었다. 메가타는 화폐 가치의 하락은 화폐의 과잉발행 때문이라는 인식하에 마쓰카타 재정의 지폐정리 방식을 도입하여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을 수립하였다. 甲ㆍ乙ㆍ丙 교환방식이 그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의 화폐재산은 축소되었고 한국은 일본의 화폐제도에 종속되었다. 세출의 긴축은 예산의 편성과 지출을 장악하여 한국재정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일본 회계법을 실시하여 긴축재정을 도모하고 부족한 예산은 차관과 공채로 충당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1,150만원에 달하는 차관은 담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여 한국 재정의 종속화를 가속화시켰다. 세입의 정리는 징세제도를 개혁하여 세입을 증가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국인 관료의 부정부패가 원인이라고 인식한 메가타는 먼저 일본인 관료로 구성된 재정고문부를 조직하여 감독체제를 수립한 뒤 새로운 징세제도인 관세관관제를 실시하여 세입의 증가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메가타의 재정정리는 한국재정의 일본 종속화를 위해 일본의 재정제도를, 일본차관으로, 일본인 관료의 감독하에 한국에 이식하는 것이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d on how Japanese financial advisor Megata Tanetaro (目賀田種太郞) recognized Korea's finances and how it affected the fiscal reorganization project. Megata investigated and studied Korean finance from around 1899, before he was appointed as a Japanese financial advisor, and conducted a financial survey for about seven months even after he was appointed. Although there were difficulties due to Lee Yong-ik's(李容翊) continued resistance and King Gojong's(高宗) cold attitude, Megata's financial investigation could be completed around May 1905 with the active defense of the Japanese cabinet and Hayashi Konsuke (林權助). As a result of the financial survey, Megata did not recognize Korea's fiscal system and recognized that there was no finance. Therefore, Megata was not intended to organize and supervise Korea's finances, but to build a completely new one. To this end, Megata took a method of reforming the monetary system, tightening expenditures, and organizing revenues as fiscal arrangements, and implementing them in order from urgent ones. The key to the reform of the monetary system was the reorganization of the Baek Dong-hwa(白銅貨). Recognizing that the decline in the value of money was due to the overissue of money, Megata established a method of reducing the amount of money by introducing the Matsukata fiscal(松方財政) bill arrangement method. It was a differential exchange method between 甲, 乙, and 丙. As a result, Koreans' monetary property was reduced and Korea was subordinated to Japan's monetary system. The purpose of austerity in expenditure was to strengthen control over the Korean finances by taking control of budgeting and spending. To this end, the Japanese Accounting Act was implemented to promote austerity, and a loan policy was implemented to cover the insufficient budget with loans and public bonds. The 11.5 million won loan strengthened its control over collateral, accelerating the subordination of Korea's finances. The purpose of organizing revenue was to increase revenue by reforming the taxation system. Recognizing that corruption of Korean officials was the cause, Megata organized a financial advisory department(財政顧問部) composed of Japanese officials to establish a supervisory system, and implemented a new a tax collection system, the tax officer system(管稅官官制), to increase revenue. In conclusion, Megata's fiscal consolidation was to transplant Japan's fiscal system, Japanese loans, and Japanese officials' supervision to Korea in order to subordinate Korea's finances 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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