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평안도 정주목사 이헌영의 흥학과 교육실태
Provincial Governor Yi Hŏnyŏng(李𨯶永)’s Activities on Scholarship Development(興學) and the Educational Condition of P’yŏngando Chŏngju in the Latter Half of the 19th Century Chosŏ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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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19세기 후반 조선 왕조가 전통 교육에서 근대 교육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정주목사로 부임하였던 이헌영의 교육 활동 사례를 통해 당시의 교육 실태를 점검한 것이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전통적인 敎學의 가치와 기능을 폄훼하였다. 조선시대의 교육 역량을 왜소․부실로 간주하는 견해들은 통감부 설치 이후 일제에 의한 교육개혁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정립되어 식민통치에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방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통 교육의 퇴락과 부진을 기정사실화하는 이론적 배경으로 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정주목사 이헌영의 흥학 활동과 실천 양상을 검토해 보면 이른바 조선후기 학교부재론이나 강학쇠퇴론과 같은 주장들은 근거가 박약함을 알 수 있으므로 전통 교육의 실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transitional state of education in the late 19th Century Chosŏn by examining the educational activities of Yi Hŏnyŏng, who was the provincial governor appointed to Chŏngju, P’yŏngan-do. After enforcing the protectorate treaty in 1905, Japan constantly initiated campaigns intended to depreciate the value and functions of traditional education and scholarship existing in Korea. The concept regarding Chosŏn’s educational capacities as undersized and insufficient was frequently employed by the colonial government as a justification for educational reforms, and even until today, this idea continuously functions as a theoretical background of regarding the deterioration and depression of traditional education as a fait accompli. However, a review on educational development and practices led by the provincial governor Yi Hŏnyŏng in the latter half of the 19th century indicates that theories such as ‘absence of school’ and ‘decline of academics’ in the late Chosŏn period are groundless. Further studies are required to explore new approaches and awareness on the reality of tradition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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