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일본어 교육의 실태 - 사회적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
Educational Policy and Status of Japanese Language of the Japanese Government - General of Korea during the Janapese Colonial Period-Focusing on social educational institu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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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은 식민지 조선의 제도권 교육기관과 사회적 교육기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규제함으로써 식민지 지배를 위한 주요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민족주의계 사립학교와 종교계 사립학교를 규제하기 위해 1908년에 시행된 ‘사립학교령’과 한일합방 이후 1911년부터 해방까지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에 근간이 된 ‘조선교육령’은 38년간 조선의 학령기 아동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강제된 교육의 형태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여러 번에 걸친 조선교육령 개정을 통해 식민지 조선은 점진적으로 동화정책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한일합방 이전 을사늑약 체결단계에서부터 한국의 민족운동적 성격을 가진 사립학교 건립운동은 일제에게 큰 위협요소였다. 당시 1908년경 전국 각처에 사립학교는 4,000개~5,000개에 이르렀고, 일제의 통감부는 1908년 ‘사립학교령’을 공포하고 사립학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 한다. 이후 조선에서의 전반적 교육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조선교육령’의 시행에 따라 당시 제도권 교육기관만이 아닌 사회적 교육기관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차 조선교육령기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으로 정규 교육기관 이외의 보조적 기능의 기관으로 ‘학술강습회’와 ‘야학’의 역할도 하면서, 일본어교육기관으로 변질되어 간다. 제2차 조선교육령기에는 전국적으로 ‘학술강습회’와 ‘야학’의 확산시기이기도 하지만 일제의 문화통치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어 외에 조선어, 산술, 한문 등의 수업이 늘어나며 일본어 교육의 침체기에 들어서는 시기이다. 제3차 조선교육령기는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일본어 교육의 반감과 고조된 반일 감정과는 달리 달아오른 교육열과 함께 피교육자 상당수가 일본어교육에 매달린 시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어는 입신양명을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되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조선교육령 공포 시기를 기준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일본어 교육이 이루어 졌으며 지역 별 해득 수준과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일본어 교육의 보급시기, 정체시기, 확장시기로 나누어 통시적 관점에서 그 실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아울러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조선총독부관보’와 ‘신문자료’등의 사료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였다.
Abstract
In this paper, based on the period of promulgation of the Chosun Education Ordinance, which was the basis of education policy in colonial Chosun, the actual situation of Japanese language education in social education institution is summarized as follows from a diachronic perspective. Through the 1st Chosun Educational Ordinance, education ideology and though were also taught to nurture loyal and good citizens through obligation of dumbing down policy and reading of the imperial Rescript on Education, and the 2nd Chosun Educational Ordinance, which was implemented during the period of cultural rule in the 1920s, deceived Chosun in the name of Japan’s internal extensionism and temporary movement, destroyed Chosun language in the academic system, and strengthened spread of Japanese. The 3rd Chosun Education Ordinance, which was enforced after the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in 1937, was a precursor to the war supplies from colonial Chosun and the implementation of the conscription system for the youth of Chosun, reflecting the wartime system to create the Imperial people’s Generation who could obey the emperor. Finally, the 4th Chosun Education Ordinance, as a ‘wartime education ordinance’ resulted in a means of the training warriors for mobilization of the wartime system through the reorganization of the educational system. This thesis analyzes how Japanese language education was conducted based of the time of the Korean Education Ordinance promulgation, which was the basis of the education policy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colonial Korea, and the level and scale of acquisitions by region, and divides it into the period of dissemination, stagnation, and expansion of Japanese language education to understand its situation from a collective perspective. In addition, in consideration of the atmosphere of the times at the time, research was conducted through feeds such as ‘Gazette of the Government-General of Chosun’ and ‘Newspaper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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