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울 암사동유적의 조사와 성과 -발굴조사 경위와 내용에 대한 소개를 중심으로-
Excavation and result of Seoul Amsa-dong site in the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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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25년에 있었던 큰 홍수로 인해 서울 암사동유적의 존재가 알려진 이래 많은 연구자들이 이 유적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홍수 때문에 유적의 대부분이 유실된 것으로 여겨지면서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암사동에서 빗살무늬토기편이나 석기 등을 채집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1967년 6월 암사동에 야구장을 건립하기 위해 터를 닦는 과정에서 유적의 일부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에 진행된 암사동유적의 발굴 내용이나 성과 등은 거의 정리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개된 것도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각종 연구논저는 물론이고 사전류에서까지 암사동유적의 발굴조사에 대한 잘못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이 글에서는 1960년대에 이루어진 암사동유적의 조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확보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경위, 조사의 내용과 성과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암사동유적에 대한 최초의 발굴은 1967년 7월 경희대에 의해 이루어졌고, 1968년에는 한국고고학협회가 주관한 연합발굴에 이어 서울대 사범대학 역사과의 발굴조사가 차례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1967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암사동 156번지를 중심으로 향후 발굴 대상지가 점차 그 주변지역으로 옮겨간 사실도 새롭게 확인하였다. 나아가 1970년대에 암사동유적의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행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1960년대에 진행된 암사동유적 조사의 성과에 힘입은 바 컸다. 바로 이것이 1960년대의 암사동유적 조사가 갖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Since the existence of Amsa-dong site was revealed due to a big flood in 1925, many researchers have had a lot of concerns for this site. However, most of the site was thought to be washed away due to the flood, so all the field archaeologists could do was collect comb-pattern pottery or stone tools at best even until the middle of the 1960s. Meanwhile, not until the parts of the site were exposed in the process of preparing the ground for erecting a baseball stadium in June,1967 did excavation survey begin on a large scale. However, the contents or outcome of excavation work on Amsa-dong site in the late 1960s were rarely organized, and only a few were open to the public. Because of this, not a few of the wrong contents of the excavation work on Amsa-dong site are discovered even in sorts of dictionary, let alone various research works. Thus, this writing looked into the exact account of excavation survey and survey contents & outcome by securing the data as much as possible including the contents related to excavation survey on Amsa-dong site made in the 1960s. As a result, this research found out that the first excavation of Amsa-dong site was done in July, 1967 by Kyunghee University, and the Korea Archaeology Society-supervised united excavation followed by excavation survey done by the department of history at SNU in 1968. Further, it was newly confirmed that centering on the area of Amsa-dong 156 where the 1967 excavation survey was done, the further excavation target site was gradually expanded into its surrounding area. What made it possible to carry out an aggressive excavation survey on Amsa-dong site in the 1970s was heavily indebted to no other than the outcome of Amsa-dong site examination in the 1960s. The very fact represents a significance of Amsa-dong site examination in the 196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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