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굿의 실체와 허상
Reality And Illusion of Gangneung Danog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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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강릉단오굿은 갑오개혁 이전에는 읍치제의로서 기능을 하였으나, 그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국가 제도적으로 성황제가 폐지되고 지방의 성황당 관리는 지역 주민들의 신앙에 따라 향배를 달리하게 된다. 1912년 경찰범처벌규칙, 1915년 포교규칙 등 일제강점기 무속통제 정책은 강릉 대성황사(大城惶祠) 자리에 천조대신(天照大神)을 제신으로 하는 신사(神祠)를 건립하게 되고, 읍치제의로서 중요한 공간이 사라져버려서 전승맥락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읍치제의로 기능하였던 강릉단오굿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에 단절되었으며, 이렇게 된 까닭은 결국 국가정책과 일제의 무속통제 정책에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까지 현재 강릉의 옥계·남항진·강동·옥천동․사기막리, 동해의 망상 등지에서 마을단위의 무속공동제의는 전승되었다. 이후 강릉 내륙 마을에서 행하던 마을굿이 사라졌으나, 행사의 선전과 번영을 주목적하며 임시적으로 행하는 ‘난장별신’ 또는 ‘장별신’은 여전히 행해졌다.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던 단오굿은 광복 이후 일부 관심 있는 촌로들, 특히 강릉 중앙시장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시장상인들을 중심으로 연행했던 굿은 ‘별신굿’에서 ‘풍년굿’으로, 또 다시 ‘단오굿’으로 명칭이 변화하였다. 현재와 같은 강릉단오제는 1966년에 복원한 강릉단오제를 기반으로 1967년 강릉단오제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임동권이 아키바의 「강릉단오굿(江陵端午祭)」과 옛 노인들의 기억을 토대로 현실맥락에 맞게 적절히 조합하여 ‘작위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1967년 이후의 강릉단오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릉단오제는 강릉시민들과 영동주민들에게 지역의 안녕과 풍요를 담보하는 중요 의례로 작용하고 있다.
Abstract
Gangneung Danogut had been functioned as a provincial ritual before the Gabo Reform and then has been experienced the change rapidly. Seonghwangje was abolished nationally, and the management of Seonghwangdang(Shamanic Shrine) becomes different depending on the faith of regional residents. Japanese shinto shrine which served to Amateras(天照大神) was built in the place of Seonghwangdang by the control policy of Korean shamanism such as police criminal punishment rules in 1912 and Propagation rule in 1915, as a result the place for a provincial ritual was disappeared and lost the function of traditional ritual. Finally, Gangneung Danogut, which functioned as a provincial ritual, became discontinued around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twentieth century. That reason was Korean national policy and the control policy of Korean shamanism of imperial Japan. However, in Okgye, Namhyangjin, Gangdong, Okcheon-dong and Sagimak-ri of Gangneung and Mangsang of the East Sea, shamanic communal rituals have been continued. And then, communal rituals was disappeared, but ‘NanjangByeolsin’ or ‘JangByeolsin’, which is temporarily performed for publicity and prosperity of the event, is still continued. After independence, Danogut, which was discontinued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egan to be performed by old people, especially merchants in Gangneung Jungang market. The name of Gut, which was performed by merchants in the market, has been changed from ‘Byeolsingut’ to ‘Pungnyengut’ and again to ‘Danogut’. Present Gangneung Danoje Festival is recreated based on Gangneung Danoje Festival of 1966. And then it became the ‘archetype’, being designated as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at 1967. Gangneung Danoje Festival of 1967 is to be ‘factitively recreated’ by Donggyeon Im who mixed Akiba’s Gangneung Danoje Festival and memory of old people related to Gangneung Danoje Festival. Nevertheless, Gangneung Danoje Festival is being performed for richness and peace of the region in residents of Gangneung and Yeo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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