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도에 나타난 수륙재의 장엄 설단과 구성
The Jangeom Seoldanon and Composition of the Suryukjae on the Gamn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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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은 수륙재(水陸齋)의 장엄(莊嚴) 설단(設壇)에 대해 주목한 글이다. 문헌자료에는 장엄과 설단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남아있지 않아 상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 글에서는 수륙재와 밀접한 감로도(甘露圖)를 통해 그 안에 그려진 재단(齋壇)의 형태와 장엄구(莊嚴具)의 양식, 공양물(供養物) 등을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조선전기 수륙재 장엄 설단은 육법공양(六法供養)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시기 재단에 그려진 분(盆)의 개수는 여덟 개로 정형화되어 있다. 또한 영가(靈駕)의 신위(神位)를 상징하는 지물(紙物)을 재단 뒤쪽에 설치하여 수륙재에서 재단에 진설된 공양물이 무주고혼(無主孤魂)에게 차별 없이 평등한 시식(施食)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재단에 진설된 과일이나 채소는 동일한 계절에 수확할 수 없는 것으로 이상화된 공양물이다. 지역에 따라 공양물을 그 지방의 물산으로 대체하였고, 감로도의 꽃 역시 계절에 영항을 받는 생화(生花)보다는, 계절의 구애 없이 상상을 구현할 수 있는 지화(紙花) 또는 채화(綵華)로 대체하였다. 17세기 감로도는 이전 시기 감로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시대에 따른 변화를 보였다. 지물의 개수는 감로도마다 차이가 있으나 무주고혼을 위한 의례임을 분명히 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재단 위쪽 공간을 장식하기 위해 재단의 양옆에 기둥을 세우고 보산개(寶傘蓋)를 거는 양식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후 18세기 초에는 공양물인 분, 꽃으로 장식한 병과(餠菓), 채지(綵紙)를 두른 지물, 과일, 화병, 촛대, 향로 등이 강조되다가, 18세기 중후기와 19세기 초기에는 재단이 완전히 생략되거나 공양물이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 감로도에서는 실재 거행하는 의례보다는 구원이 필요한 아귀(餓鬼)가 더욱 강조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재단의 양 옆에 기둥을 세우고 윗 공간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 시기부터 장엄용 의식구와 설단의 형태는 점차 정형화하였다. 수륙재의 재단에 왕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재단에 등장하였고, 재단이 점차 대형화되었다. 재단 위의 공양물 중에 지화는 전 시대를 거쳐 끊임없이 진설되었지만, 시대에 따라 지화를 화분에 장식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19세기까지 자연스러운 꽃꽂이나 팽이난등이 주를 이루었다면, 20세기 이후 부채난등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통도사 광무4년 감로도(1900)에서 재단 오른쪽의 화분이나 청련사 원통암 감로도(1916)에서 재단의 꽃을 주시하면 이전과는 다른 기법인 부채난등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작화 방식의 변화는 육법공양의 하나로 꽃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가 퇴색하였음을 의미한다. 즉 신에게 바치는 공양물이 아닌 재단의 장식물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륙재가 의례적 성격의 범위를 넘어서 보다 대중적으로 공연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The early days of the Joseon Dynasty, rituals table of the Suryukjae installed centre around the Yukbeopgongyang. At this time the number of bowls drawn on the table were always eight. Also, The Jimul symbolizing ancestral tablet of spirit set up backyard of table. This clearly show without distinction to the Mujugohon(無主孤魂, a forlorn wandering spirit that has no posterity to perform the memorial service) that the Gongyangmul installed on the table at the Suryukjae. The 17th century the Gamnodo follow form the previous period, but it was been changed with the times. The number of the Jimul differ each the Gamnodo, apparently that is ritual for the Mujugohon. At the end of 17th century they built pillar beside of ritual table for decoration of upper space and suspend the Bosangae(寶傘蓋, Umbrella-shaped ceremonial utensils). In the early years of the 18th century, It focused a bowl, a rice cake and biscuit decorated with flower, the Jimul belted with color band, a fruit, a flower vase, a candlestick, a censer. In the middle-end of the 18th century and the early 19th century, the ritual table be omitted or simplified the Gongyangmul. At this time, It was focused the Agwi(餓鬼) that need to save than the Buddhist ceremony. In the middle-end of the 19th century, the ritual decoration and the form of the ritual table gradually start to standardization. And It start to appeared the Jeonpae that wish live a long life of the royal family. The ritual table of the Suryukjae had been become bigger and more public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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