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한 가야금병창의 이식과 확장
Transplantation and Expansion of Gayageum Byeongchang across the border into Nor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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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분단 이후 남도시나위권 음악문화였던 가야금병창이 서도문화권의 북한에 정착하는 과정과 변화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월북한 안기옥과 정남희는 가야금 전공자를 육성하기 위해 『가야금교측본』을 제작하였고, 가야금연습곡으로 노래선율의 일부로 전주를 삼은 민요풍노래 <매봉산타령>과 전라도민요 <물레타령>을 수록하면서 북한식 가야금병창이 시작되었다. ‘연습곡’이었던 <매봉산타령>은 1956년 김일성 중심의 새로운 혁신을 강조했던 제3차 당대회 경축무대에서 전통악기 가야금과 새로운 사회주의 조선의 노래말이 결합된 작품으로 연주됨으로써 북한의 첫 번째 가야금병창 ‘작품’이 되었으며, 이후 가야금과 병창은 엘리트 음악인뿐만 아니라 군중문화예술 콘텐츠로 확장되었다. 북한에서 가야금병창은 처음 보급되었을 때부터 과거의 전통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사회주의 체제의 문예정책에 부합하는 변화를 선택하였다. 그들은 판소리 스타일의 노래가 아닌 경서도민요나 메나리 토리 선율에 체제 선전 내용의 노래말을 얹어 만들어낸 민요풍노래를 가야금병창으로 연주하였으며, 양악과 같은 화성을 넣고, 나아가 독병창, 가야금독주와 병창, 배합관현악과 가야금병창 등 다양한 연주형태를 취함으로써 전통문화유산이 인민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생활과 함께 변화하였다. 그리고 정책을 효과적으로 선전하고 인민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 현재 북한의 가야금병창이라고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is a paper that investigates the process of Gayageum Byeongchang, which was a musical culture of Nam-do Sinawi after division, settling in North Korea in the Western cultural area and the reasons for its change and development from the perspective of cultural movement and cultural transplantation. Traditional musician who crossed the border to North Korea performed various musical activities in the process of settling into North Korean society. In addition, they published <가야금교측본 Gayageum Instructional Book> to foster gayageum majors. They included the folksong style song <Maebongsan Taryeong> and the Jeolla-do folk song <Mulre Taryeong> as exercises for gayageum in the textbook, and from this time on, North Korean-style gayageum byeongchang began. <Maebongsan Taryeong>, which was a ‘practice song’, became North Korea’s first gayageum byeongchang ‘master piece’ when it was performed on the celebratory stage of the 3rd Congress of the Workers’ Party of Korea in 1956. Since then, gayageum and byeongchang have expanded not only to elite musicians but also to popular cultural and artistic content. In North Korea, gayageum byeongchang did not remain in the traditions of the past from the time it was first spread, but chose changes that were in line with the literary and arts policy of the socialist system. Instead of a traditional pansori-style song, they sang a folk song style song created by adding regime propaganda lyrics to the melody of Gyeongseodo and Menari Tori with gayageum byeongchang. In addition, by adding chord similar to Western music and taking on various performance forms such as lylic solo and byeongchang, gayageum solo and byeongchang, mixed orchestra and gayageum byeongchang,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did not become distant from the people but changed along with their lives.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North Korea's current gayageum byeongchang is the result of efforts to more effectively promote policies and gain public respo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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