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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避難行錄』의 史學史的 고찰

Historical Review of Pinanhaengn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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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임진왜란시에 선조를 호종했고, 분조에서 광해군을 시위했던 정탁의 피난일기인 『피난행록』을 사학사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피난행록』은 1592년 4월 30일부터 1593년 1월 28일까지 정탁이 겪었던 사건들을 일기 형식으로 기술하고, 뒤에 행재소에 올렸던 문서를 부록한 형태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약포집』이 간행되는 과정에서 수록되었는데, 『용사일기』가 그 저본이 되었다. 『용사일기』는 임진·계사년 동안 정탁이 겪었던 일들을 기술해 놓은 피난일기의 초고본이다. 『용사일기』는 1592년 7월 17일 중간 기사부터 1593년 1월 12일까지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반해, 『피난행록』은 1592년 4월 30일부터 1593년 1월 28일까지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용사일기』는 『약포집』 간행 당시 『피난행록』으로 수록되었으나, 현전하는 그것은 많은 내용이 결락되어 있다. 따라서 『용사일기』의 형태나 수록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피난행록』과의 비교· 검토가 매우 중요하다. 두 책의 해당 기사를 비교· 검토해보면 대체로 본문의 내용이 일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용사일기』가 『피난행록』의 저본임을 알 수 있으나, 두 책의 기사 내용을 검토해 보면 각각의 책에만 실린 기사가 확인이 되고, 부록된 장계에서도 일부 차이점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피난행록』에는 행재소에 올린 장계 외에도 광해군에게 올린 보고의 내용도 확인되고 있다. 두 자료는 1592년 당시 서북 지역의 전황과 분조의 활동을 구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라 할 수 있다. 『피난행록』은 선조와 광해군을 호종했던 정탁이 남긴 기록으로 당시의 조정과 분조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선조실록』에 수록된 기사와 비교를 해보면, 『피난행록』의 기사는 매우 신빙성이 높고, 『선조실록』에 누락된 인사 관련 기사와 세자빈의 출산 기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피난행록』에는 당시의 사건만이 아니라 정탁이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장계의 정보를 수합해서 선조에게 올린 다수의 장계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선조실록』에 반영되지 않은 것들로 『선조실록』의 오류와 사료의 빈약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피난행록』은 임진왜란기 정탁의 활동상을 구명할 수 있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선조의 호종과 광해군의 분조 활동을 파악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Abstract

when the Imjin War broke out and led the Bunjo with Gwanghaegun. He kept a record of what he experienced during the evacuation and what happened that day. The book is called The Yongsailgi(龍蛇日記). In addition to the description of the incident, this book contains various documents sent by Jeongtak to King Seonjo. This material is very important in that it was written by a bureaucrat who assisted the king during the war. This book was later included in Jeongtak's collection under the name of Pinanhaengnok(避難行錄). This book contains a number of articles that cannot be found in the Yongsailgi. Through this book, we can infer the original form of the Yongsailgi. Considering that the articles of the two books coincide, it is certain that the Yongsailgi is the base of the Pinanhaengnok. The Pinanhaengnok are very valuable in that they are records of Jeongtak instead of serving Gwanghaegun, who led the Bunjo. The records of Jeongtak, who was following Seonjo and Gwanghaegun, are very valuable data that can supplement the poor records of Seonjo in that many historical records were lost due to the war. In future studies, historical research on the records of the war left by Jeong Tak is urgently requ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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