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의 혼인담론 -조혼, 축첩, 자유연애를 중심으로-
Discourses on Marriage in Early Modern Korean Protestantism: focusing on “early marriage,” “concubinage,” and “fre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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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혼인 담론이 지닌 특성을 조혼, 축첩, 자유연애를 중심으로 규명하였다. 19세기말 20세기초 문명개화기의 기독교는 우생학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지식으로 전통적 혼인풍속인 조혼과 축첩의 폐해에 대한 비판담론을 생산하고, 자체의 신학적 논거를 통해 새로운 혼인윤리를 구축하였다. 당시 기독교는 조혼과 축첩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혼속과의 단절을 통해 문명과 개화의 종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한편 내부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를 통과하면서 교회의 주요타자는 전통문화가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는 자유주의적 세속문화였다. 당대의 세속문화는 연애라는 새로운 개념을 한국사회에 이식하였고, 사랑에 기초한 결혼이란 생소한 혼인윤리를 제시하였다. 당시 교회의 눈에는 자유연애와 이에 근거한 결혼이 위협적인 것으로 비쳤다.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생소한 개념과 윤리들이 야기하는 혼란과 위험성을 신앙의 논리로 잠재우려 노력하였다. 이 논문에서 분석한 조혼, 축첩, 자유연애는 서로 관계가 없는 별개의 사안들로 보이지만 당대의 사회적 맥락에서는 깊이 연동되어 있었다. “제이부인”의 존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이부인”은 전근대적 혼속인 조혼과 자유연애라고 하는 사랑에 기초한 새 시대의 혼인윤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기이한 형태로 등장한 착종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of early Korean protestant discourses on marriage, focusing on “early marriage,” “concubinage,” and “free love.” Protestant church from late 19th century to early 20th century produced the new marriage ethics, revealing the harmful effects of “early marriage” and “concubinage,” prevailed in Korea, by weapon of modern knowledge, such as eugenics. Protestantism tried to reinforce the image of “the religion of civilization and modernization,” at the same time reinforcing the religious identity of believers, by criticizing the traditional marriage customs. Since the 1920s, however, the major cultural enemy of protestantism was not the traditional culture but the secular culture. In the 1920-30s, the secularized culture introduced a new concept, “free love” and produced a new marriage ethics, “marriage based on love.” They were regarded as dangerous to the church leaders. Protestant church, therefore, tried to oppress the chaos and danger produced by such concepts and ethics. In early modern Korea, “early marriage,” “concubinage,” and “free love” had a close mutual relationship. For example, the “second wife” was a triple product of “free love,” “concubinage” and “early marri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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