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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스님의 초기수행과 보광사·도솔암의 인연

An early practice of Bae Yong-Seong sunim and his connection with Bogwangsa and Doso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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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불교학

초록

용성스님의 초기수행은 禮拜와 陀羅尼 持誦을 통하여 업장을 소멸하고 난 뒤 無字話頭를 들어 깨달음을 얻었다. 용성스님은 고운사에서 수월스님의 지도로 禮拜와 大悲呪로 신심을 굳건히 하고 업장소멸한 후 初見性을 하였다. 그에게 대비주를 지도한 수월스님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다소의 오류가 있었다. 대부분이 경허의 제자 水月音觀이라고 하였으나, 논자의 조사에 의하면, 고운사의 水月永旻임을 밝히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이 있었던 것은 거의 동시대에 비슷한 방법으로 수행하여 不忘念智를 성취한 선지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고운사의 水月永旻禪師의 碑文을 검토하여 밝히게 되었다. 다음으로 용성스님이 초기에 수행한 다라니수행이 선문에서 수용하게 된 연유와 과정을 밝혔다. 용성스님은 千手呪를 하였으므로 이를 정리하여 한글본의 『千手經』을 譯述하였으며, 六字呪도 한글 『六字靈感大明王經』을 譯述하였다. 일찍부터 禪門에서는 千手呪를 수용하여 조석독송 및 祈禱, 齋 의식 등에서 사용하였다. 또한 수행방법으로도 수용되었으며, 그 공덕에 대한 믿음도 많아 널리 사용되었다. 천수주 가운데서도 伽梵達摩 譯本이 주로 애송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독송용 『千手經』으로 의식전에 반드시 독송되고 있다. 한편 六字呪는 10세기 말경 天息災에 의해 번역된 『佛說大乘莊嚴寶王經』 卷4에 실려 있다. 이 경은 흔히 “옴마니반메훔”으로 알려져 있는 六字呪이다. 용성스님은 大悲呪와 함께 六字呪도 염송하였다고 한다. 용성스님은 『六字靈感大明王經』 번역본에서 “모든 경전은 벼의 껍질과 같고 이 다라니는 백미와 같다”라고 하는 경전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다라니 염송을 강조하고 있다. 끝으로 용성스님과 보광사 도솔암의 인연에 대하여 논하였다. 용성스님은 초기수행을 대부분 보광사와 도솔암에서 하게 되었다. 당시의 나이로는 19세에서 21세 사이이며, 밝혀진 것만도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1차는 19세 때에 보광사 도솔암에서 대비주와 육자주를 염송하여 “통밑이 빠지는 것”과 같은 경지를 체험하여 1차 오도송을 읊었다. 2차는 20세 때에 보광사에서 『六祖壇經』을 구해보게 되었으며, 이때 본 『六祖壇經』은 용성스님의 대각교운동의 指南으로 삼게 되었다. 3차는 21세 때에 보광사 도솔암에서 無字話頭를 타파하여 2차 오도송을 읊게 되었다. 그러므로 용성스님과 보광사 도솔암의 인연은 참으로 소중하였으며, 이러한 수행으로 뒤에 3․1 독립운동이나 대각운동의 전개에 밑바탕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Abstract

Yong-Seong Seon master achieved the extinction of his karma through his early practice of worship (禮拜), recitation of Darani (陀羅尼 持誦). Then, he attained his first illumination with the koan of the letter Mu (無), under Soo-Wer sunim's guidance in Gowunsa. The identity of Soo-Wer sunim has been controversial in the academic world. On examination through careful research, he has been found to be Soo-Wer Yeong Min(水月永旻) of Gowunsa. The confusion regarding his identity is thought to have continued because there were several contemporary Buddhist teachers who achieved Boolmangnyeomji (不忘念智) through similar practices. This article presents the reasons and courses of Seon Buddhism's embracement of Yong-Seong's early Darani practice. As Yong-Seong sunim practiced and examined Cheonsuju(千手呪) and Yukjaju(六字呪), he translated the related Buddhist sutras into Korean - 『CheonSooGyung(千手經)』 and 『YukJaYeongGamDaeMyeongWangGyeong (六字靈感大明王經)』 respectively. YukJaju is found in the fourth volume of 『BoolSulDaeSeungJangUmBoWangGyeong (佛說大乘莊嚴寶王經)』 translated by CheonSikJae (天息災) in the late 10th century. YukJaJu is a mantra well-known as Om Mani Padme Hum. Yong-Seong sunim recited this mantra along with DaeBiJu (大悲呪). In the translated edition of 『YukJaYeongGamDaeMyeongWangGyeong(六字靈感大明王經)』, he put stress on the importance of recitation of YukJaJu by quoting an metaphor from the sutra 'all Buddhist sutras are husk of rice whenYukJaJu is the very core of rice itself.' The last thing this article focuses on is his early practice mainly done in Bogwangsa and Dosolam. His age then was between 19 and 21, and his three main activities in these places during this period have been discovered. The first one was what he expressed as 'the bottom of a barrel vanished' in his first song of enlightenment. He attained this first illumination at the age of 19 through recitation of DaeBiJu and YukJaJu. At age 20, he was introduced to the Buddhist script titled 『YukJoDanGyeong(六祖壇經)』 in Bogwansa and adopted it later as a guide book for his DaeGakGyo (大覺敎) movement. When he was 21, he vanquished his koan of the letter Mu and composed his second song of enlightenment. Yong-Seong Seon master's strong ties with Bogwansa Dosolam is considered valuable and this connection provided the solid basis for his independence movement of March 1 and for his Great Enlightenment movement(大覺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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