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全州李氏行狀”을 통해 본 18세기 여성의 생활상
A Study on Women’s Living Aspects in the 18th Century in Seonbi-Jeonju Yissi-Hae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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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최근에 발굴된 『선비전주이씨행장』에 의거해 작성되었다. 이 자료는 선비의 행적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담아내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전주이씨는 반가에서 태어났으나 성장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계실로 혼인하였다. 시가인 강릉최씨 일족은 남편의 고조로부터 본관지에서 양양으로 이주하였고, 이주한 이래로 4대에 걸쳐 연이어 초시와 문과에 급제한 출사자를 배출하였고, 동생형제들이 산계로 정5품 통덕랑 품계를 확보하면서 사회적 입지와 위상을 확보해 갔다. 한편 이들은 향리에서 동족마을을 구성하고 친족범주에서 양자를 영입하여 가계를 계승하면서 부계 친족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구현하였고, 문중조직과 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성향을 보였다. 전주이씨의 남편은 養子로 영입된 季宅의 가계를 계승하였고, 혼인 한지 12년 만에 1남 1녀를 두어 6인 가족을 이루었다. 비록 산계로 통덕랑을 갖은 반가였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소농경영이었으며, 이는 이들이 동족마을에 정착하게 되는 배경으로 이해되었다. 전주이씨의 가정생활은 남편의 잠교로 부학과 부덕을 쌓으면서 가부장질서를 이행하는 단란한 생활이었다. 취약한 물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전주이씨는 의연한 생활자세와 성숙된 효 의식을 견지하였으며, 가족의 화목과 자녀의 교육을 중시하면서 생활전반에 걸쳐 명분과 규모가 엄정하고 절연하였다. 이러한 생활상은 보편화된 친족공동체적 질서를 충분히 인지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처해 가는 전주이씨의 생활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전주이씨는 미망인이 되면서 극빈한 생활 속에서도 안빈한 자세로 의연한 생활자세를 견지하였고, 자신은 호탕하게 웃고 즐기는 자리를 기피하면서 아울러 집안의 대소사가 집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가솔을 단속하였다. 그러면서도 친인척간의 편지로 문안활동을 하면서 명분이 엄정한 자세를 견지하였으며, 특히 봉제사 의식이 한층 강렬해 지고 있다. 이러한 생활상은 친족공동체의 가부장적 질서 하에서 미망인으로서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자세였으며, 친인척간의 화목과 자식교육을 보다 중시하면서 가계계승을 구현하는 자기희생적 생활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미망인의 자녀교육은 전일적이었고 전 생애적인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성현이 되라는 이상을 담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善한 心性을 바탕으로 가계계승․충효의식․학문하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전일적인 것이었으며, 科慶 즉 입신출세를 통해 家業의 번창과 가계계승을 구현하기 위한 미망인의 전 생애적인 것이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organize the life of Jeonju Yissi by referring to the document Seonbi-Jeonju Yissi-Haengjang which was recently found, and based on this, to understand women’s dynamics in their daily life in the Joseon Dynasty period. Jeonju Yissi was of noble birth, but because of her father’s death, she had to depend on the family of her mother’s side for support with her mother. Because of this growth environment, Jeonju Yissi became her husband Choissi’s second wife. Her husband’s home produced government officials for three consecutive generations. In addition, his family established a consanguineous foundation and developed the village composed of kinsmen. Especially, as his brothers were in government service called Tongdeoknang as a Sangye, a government post, they enhanced the rank of their family in the village. Jeonju Yissi got married and settled down in the consanguineous village. Her husband became his uncle’s adopted son, and both her husband and his foster father obtained a rank called Tongdeoknang as a Sangye, but they managed a small farmer’s household. Jeonju Yissi cultivated the wives’ knowledge and value through her husband’s teaching. She had a son and a daughter 12 years after her marriage. She created a happy family that consists of 6 people. Even after her husband’s death, she kept faithful, strict, and isolated, remaining a widow for 33 years. Jeonju Yissi’s daily life was highly self-conscious by cultivating the knowledge and value faithful wives had to accumulate under the patriarchy based on the relationship by blood and marriage, and she became much more self-conscious after her husband’s death. Even though her life was self-sacrificing it was rather independent and dynamic in that she established her identity by living in moderation, and thrived her family and carry on her family line by making her son keep learning knowledge and building up his moral character. In this respect, Jeonju Yissi becomes a model as ‘a woman of virtue among w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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