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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장군에 대한 전쟁 서사와 인물 평가, 그리고 의병사의 재구성

A War Narrative and Character Evaluation of General Kwak Jae-Woo, and a Reconstruction of the History of the Righteous 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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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부터 매년 호국보훈의 달의 첫째 날인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하여 국가기념일로 삼고 있다. 이는 의병장 곽재우가 1592년 4월 22일에 처음으로 의병을 조직한 날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기념일로 삼은 것이다. 그만큼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큰일을 해냈다. 곽재우 장군은 임진왜란 초기에는 의병장의 자격으로 정암진 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정유재란 당시에는 방어사의 자격으로 화왕산성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곽재우 장군에 대한 전쟁 서사를 통해 장군 본인은 물론 여러 주변 인물에 대한 이런저런 인물 평가를 접하게 된다. 이는 전쟁 활약상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곽재우 장군에 대한 인식의 지도는 역사적 논의가 빈약한 상태에서 그려진 것도 많으며, 그만큼 그에 대한 기록과 기억은 울퉁불퉁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곽재우 장군에 대한 기록과 기억을 보정하는 작업, 그리고 한국 의병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Abstract

Since 2010, June 1 has been designated as ‘Righteous Army Day’, observed as a national memorial day. This date commemorates April 22, 1592, the first day of organizing the righteous army, converted to the solar calendar. Kwak Jae-Woo played a major role in defeating the Japanese enemy by organizing the righteous army during the Imjin War. In the early days of the Imjin War, General Kwak Jae-Woo defeated the enemy in various battles, including the Battle of Jeongamjin, in his capacity as the righteous army commander. Furthermore, at the time of the JeongyooJaeran, he defended Hwawangsanseong Fortress. It can be seen that the war narrative about General Kwak Jae-Woo contains a character evaluation discussing the identity of existence in a war situation. In the process of referring to General Kwak Jae-Woo’s historical position, attention needs to be paid to the roles of Kim Seong-Il, Yi Won-Ik, and Yoo Seong-Ryong. The perception of General Kwak Jae-Woo has been shaped by limited historical discussion, resulting in inconsistent records and memories. Thus, Tthrough further reflection on General Kwak Jae-Woo, it is possible to properly discus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righteous army that emerged in a national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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