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예술과 도학 세계 - “理到”의 意境에 대한 사상사적 고찰
A Study on the World of Toegye’s Neo - Confucian and Aesthetical Spirit - the Spiritual Realm of Yido(理到) and Genuine Pl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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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도학은 인간을 전인적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논의 구조 역시 이성과 감성을 구분하지 않는다. 삶과 예술, 학문이 하나로 어울어진 종합적인 체계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재는 이를 서구의 이성을 기준으로 한 범주에 따라 해체하고 있다. 본고는 이성적인 분석에 치중하여 서구적 기준에 따라 해체된 도학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보고, 이러한 관점에서 퇴계 이황의 천리시와 서예작품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내린 본고의 결론은 퇴계의 이러한 예술작품이나 행위가 도학자로서의 일상과 예술이 하나로 일관된 결과이며, 고려말 포은 정몽주로부터 이어지는 보편적 정신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퇴계의 시나 글씨는 그의 삶과 학문, 예술적 감성 등이 집약된 것이다. 이에는 “이도”로 표현되는 퇴계의 도학적 성과 또는 학문 정수가 녹아있다. 퇴계는 자신의 내면에서 모든 존재에 편재하는 천리와 그 발현을 확인하였다. 그의 순수한 내면은 이 순수한 천리의 발현 결과였다. 그는 또한 대상 혹은 자연에 편재하는 천리를 느끼며 공명하였다. 대상의 천리와 내면의 천리가 하나임을 깨닫는 것, 그리고 둘이 하나 됨에서 느껴지는 자연 혹은 생명에 대한 심미적 경외는 그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그는 말년에 천리가 도처에서 드러나며 자신의 인식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이 단계에 이르러 본체와 완전히 하나 됨을 느꼈고, 자연에 노닐며 그리던 이상이 완숙해졌음을 토로하였다. 그러므로 “이도”는 이러한 퇴계의 정신적, 예술적 성숙의 최종 단계가 반영된 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퇴계에 의하면 이러한 기쁨은 스스로의 내면이 도덕적으로 성숙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그는 일상을 경의 실천으로 일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 있으며 “유어예”의 예술 활동을 아울렀다. 그리고 이러한 기쁨을 향유할 수 있는 전인적 자아를 성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학문(學文)”과 “서법(書法)”을 정심(正心)의 차원에서 논의하면서도, 예술을 도덕 수양의 수단으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그는 예술 행위가 윤리적 성숙을 가능하게 해주고, 윤리적 성숙이 작품과 심미행위에 진실성을 보장해준다고 보았다. 퇴계의 예술은 “지어도(志於道) 거어덕(據於德) 의어인(依於仁) 유어예(游於藝)”이라는 길을 따르는 도학 실천의 결과 혹은 경의 일상에서 정심의 예술을 포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계나 우암은 퇴계의 이러한 세계, 특히 ‘즐거움[樂]’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도학은 “기발이승”의 일도 구조와 “심시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일상 감성을 떠난 본질적인 감성은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의 실천은 이 일반적 일상의 감정을 절도에 맞게 조절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를 벗어난 이발의 감성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 토대에서는 마음을 맑히는[澄心] 공부가 있을 뿐이며, “즐거움”은 이에 따른 깊이의 차이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퇴계는 만물일체적인 측은지심과 같은 이발의 정감과 편재한 리에 대한 인식에서 락이 이루어지고, 사계-우암은 징심의 상태에서 적의한 정감의 발출로서의 중절의 화를 주장하므로 락 또한 이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하겠다. 이는 각자의 철학 혹은 도학에 근거한 것이며, 나름의 내면적 변화가 수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계와 우암의 비판은, 이들이 바라보는 세계가 퇴계의 세계와 일치하지 않아서이며, 일차적으로는 퇴계의 삶과 예술에 대한 미학적 비판이라 하겠지만, 이후 벌어지는 여타의 도학 논쟁과도 다를 바 없는 쟁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사실 도학과 미학의 구분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상사적인 분석과 예술세계에 대한 분석이 다를 수도 없는 것이다. 본고가 고려말 포은의 천리시를 분석하여 특징을 구분하고, 이를 기준으로 퇴계의 천리시부터 사계-우암의 비판까지 연속하여 살펴보려는 것도, 이처럼 도학자들의 미학 혹은 예술 세계가 주관적 감성 혹은 심미판단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천리시란 결국 도학자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며, 여러 문학적 수사를 넘어서는 보편적 사상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도학적인 견지에서 고하와 이동을 논할 수도 있고, 동시에 독자의 내면에 강한 영적 감흥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는 서예 또한 같다. 그러므로 도학적 예술의 역사와 작품, 비판을 사상사와 일관시켜 봄으로써, 우리는 도학자들의 정신세계가 단절된 주관세계가 아닌 소통되는 보편적 세계이며, 이성과 감성을 아우르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사계와 우암의 이러한 주자학 계승의식과 퇴계비판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이들 정신세계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성과 감성을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도학적 세계관의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계와 우암은 퇴계의 ‘노님’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참된 즐거움’이 무엇인지 구체화시킨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이들에 상응하는 정신세계 내지 예술세계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이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닫힌” 감성의 충돌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이 충돌에서 문학 혹은 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정신세계의 모습과 그 사이의 길항도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미학과 철학을 아우르는 도학”이라는 전제에서의 사상 혹은 미학 검토는 우리가 ‘통일되고 정합적인 삶의 반영으로서의 도학’이라는 원래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함으로써, 도학 연구의 지평을 보다 넓혀줄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is trying to reconstruct the Neo-Confucianism from Zhu xi’s doctrine(道學) back into its original shape. The Confucianism in Sung-Ming dynasty or Chosun dynasty was the result of holistic learning and practice. Therefore, all results of the Neo-Confucianism from Zhu xi’s doctrine should be searched in this way. The philosophical poetry and calligraphy of Toegye Yi-Hwang can be a model of this case, so I will explore his spiritual realm and the world of art. The conclusion of his philosophy is on revelation of the Principle in one’s inner world, and his art was the expression of it. The Omnipresent Principle always permeates human mind, and one can feel it and be one with it. It is the Joy[樂] beyond compare. Toegye’s poetry and calligraphy, especially trained in neo-Confucian category, sang this Joy. It means that he reached and found the world of the self-revealing Principle. He and the Principle are the One. Toegye’s poetry and calligraphy are the evidence of this neo-Confucian and aesthetic experience. His songs are the artistic declaration of this Joy, and his works of calligraphy are the results of his inner world and trace of self-cultivating itinerary. Sagye(沙溪 : 金長生) and Uam(尤庵 : 宋時烈) criticized that Toegye’s joy is not the Genuine Pleasure[眞樂], commented by Zhouxi, because they didn’t agree Toegye’s neo-Confucianism. They didn’t believe that the Principle can self-reveal. They asserted like this : ‘The Principle is just principle, it cannot be the omnipotent thing. And human being is just human being. Therefore one should control his feelings, and make his mind calm down to the end. There is no Joy, what Toegye said.’ This was the conflict and controversy of different views of ideal neo-Confucian spiritual world. And it can mean that we can put the artistic worlds of neo-Confucianism to debate, and that is a kind of events in the history of neo-Confucian thought. Of course, it is also a kind of aesthetical theme. So we can discuss Toegye’s poetry and calligraphy in the view of philosophy, and be moved in the point of aesthetics, too. In the point of neo-Confucianism, philosophy and aesthetics are the double-sideness of human being, that is paradoxical but harmoni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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