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고려시대 관료층의 別墅 생활― 李奎報와 李穡의 사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Life of the Byeolseo(別墅) managed by the Bureaucrats in Goryo Dynasty – Centering on the case of Lee Gyu― bo(李奎報) and Lee Saek(李穡)

0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別墅는 本第와 인접한 景勝地나 田園地에 위치하여 休養 혹은 賓客을 위한 장소나 관료가 은퇴 후 거주하는 일시적 거주처였다. 고려시대 관료층 사이에는 은퇴 후나 정치활동이 여의치 않을 경우 관직에서 물러나 군자로서의 자세를 함양하기 위한 장소로 별서를 조영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으로써 자의든 혹은 타의든 관직에 물러나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여생을 마무리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관료층은 관료로 성실히 복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풍류적 자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別墅를 통해 전원생활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면서 휴양과 함께 경우에 따라 불만이나 어려움을 해소하는 장소로 여겼다. 이와 같은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의식은 별서 이외에도 본제의 내부 혹은 근거리에 庭園을 조성함으로써도 체험되고 있었다. 한편 관료층이 별서, 정원을 이용하고 있던 양상은 그 소유자의 상황, 특히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이 엿보여 주목된다. 별서와 정원은 유흥을 즐기는 장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관직에 물러난 관료에게 심신을 휴양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고에서는 李奎報와 李穡의 문집에 수록된 詩文 작품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규보에게 있어서 별서 혹은 정원에서의 생활은, 풍류적 자연관에 입각하여 여유로운 휴양의 기회를 마련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관직에 재임해 있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심신을 휴양하는 장소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색 역시 정치 사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별서를 매개로 동료와 교류하면서 심신을 휴양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별서는 기본적으로 休養과 賓客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 사안 등으로 관직에 물러나 있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퇴거하기를 희망하는 장소이기도 했던 것을 알려준다.

Abstract

Byeolseo is a term indicating a building which was built in a separate place from the main house. It functioned as a rest place where its owner could freshen himself up or give a party to please guests. Bureaucrats have had a dream to live a life for the rest of their days in the countryside. During not only in the time of working in the government but also in the time of withdrawing from the office, they had a poetic view of nature that could mellow out the life within the nature to the end. With this poetic view of nature they built Byeolseo or garden that could enjoy the beauty of nature and freshen themselves up. By the way in some cases they managed the Byeolseo or garden as the place of freshening theirselves up from the difficulties which were made from political problems. Especially such a political relations with the management of Byeolseo are found in the literary works written by Lee, Gyu― bo and Lee, Saek. Lee, Gyu― bo and Lee, Saek composed several poets and proses relating with the life of Byeolseo. In these poets and proses we can find the facts that they managed the Byeolseo as the place of solving the political problems. Especially when they had the political problems, for example in case of retire against their wills, they interracted with friends in the Byeolseo and freshened theirselves up. And if they determined to retire the political activities, in some cases they desired to reside in the Byeolseo.

참고문헌 (23)

  1. 朴京安, "麗末鮮初 順興安氏家의 坡州農莊에 관하여", 京畿鄕土史學, 5 (2000)
  2. 朴京安, "安牧(1290~1360)의 坡州農莊에 관한 小考", 實學思想硏究, 15‧16 (2000)
  3. 박희성, "왕유의 자연미와 망천별업의 조경사적 의의", 韓國造景學會誌, 292 (2001)
  4. 朴宗基, "李奎報의 生涯와 著述 傾向", 韓國學論集, 19 (1996)
  5. 宋炳基, "高麗時代의 農莊12世紀 以後를 중심으로", 韓國史硏究, 3 (1969)
  6. 신은제, "고려시대 田莊의 용례와 범주", 지역과 역사, 0(15), pp.119~142 (2004), 부경역사연구소
  7. 신은제, "고려시대 전장의 형성과 그 위상", 한국중세사연구, (18), pp.245~278 (2005), 한국중세사학회
  8. 심우경, "高麗時代 造景文化와 淸平山 文殊院 禪苑의 特性", 江原文化硏究, 23 (2004)
  9. 安秉佑, "金容燮敎授停年紀念 韓國史學論叢" (1997), 지식산업사
  10. 尹國炳, "高麗時代의 庭苑用語에 관한 硏究", 韓國庭苑學會誌, 11 (1982)
  11. 尹英活, "高麗時代의 庭苑에 관한 硏究(Ⅰ)造景樹木의 選定趨勢와 配置性向", 韓國庭苑學會誌, 41 (1985)
  12. 尹英活, "高麗時代의 庭苑에 관한 硏究(Ⅱ)宮闕庭苑과 民間庭苑의 構造", 韓國庭苑學會誌, 51 (1986)
  13. 李炳熙, "高麗後期 農地開墾과 新生村", 湖西史學, 34 (2003)
  14. 李佑成, "高麗中期의 民族敍事詩 東明王篇과 帝王韻紀의 硏究", 成均館大 論文集, 7 (1963)
  15. 이익주, "이색의 삶과 생각" (2013), 일조각
  16. 이정호, "이규보의 농촌현실관과 농업진흥론", 史叢, 53 (2001)
  17. 이정호, "高麗後期 別墅의 조성과 기능", 韓國史學報, 27(27), pp.215~242 (2007), 고려사학회
  18. 이정호, "여말선초 京第 · 別墅 · 鄕第의 조성과 생활공간의 변화", 한국중세사연구, 25(25), pp.89~116 (2008), 한국중세사학회
  19. 이창업, "高麗時代 別墅建築의 造營 背景에 關한 硏究 -古文獻 分析을 통하여-", 대한건축학회논문집 계획계, 20(9), pp.163~172 (2004), 대한건축학회
  20. 이창업, "高麗時代 別墅建築에 關한 硏究", 大韓建築學會論文集, 24(2) (2004)
  21. 이재근, "한국의 별서정원", 한국전통조경학회지, 23(1), pp.139~144 (2005), 한국전통조경학회
  22. 정은정, "고려중기 경기지역의 공한지 개발", 지역과 역사, (16), pp.205~240 (2005), 부경역사연구소
  23. 洪承基, "高麗貴族社會와 奴婢" (1983), 一潮閣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2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