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조동호(1892~1954)의 생애와 항일독립운동
The Life and the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of Cho Dongho(1892~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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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유정 조동호는 일제강점기에 국내와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1910~20년대에 중국 상하이에서 동제사·신한청년당 등 여러 민족단체의 결성과 활동을 주도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임시의정원에서도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도 국내외에서 조선공산당 활동을 전개하면서 그 국제적 승인을 이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일제 말기에도 일명 ‘조동호 그룹(화요회 그룹)’ 및 조선건국동맹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또한 그는 거의 평생을 언론계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대적 통찰력과 민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다수의 기사와 논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조동호의 생애와 활동은 출생부터 중국으로 유학하기 전까지의 시기(1892~1914), 중국 망명 이후부터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시기(1914~1923), 귀국 후 8.15 전까지 국내를 중심으로 국외를 오가며 활동한 시기(1923~1945), 8.15 이후 정치 활동과 교육 활동을 하다가 여운형 암살 이후 낙향한 시기(1945~1954) 등 네 시기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활동은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여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김규식을 그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여 3.1운동의 기폭제를 만들어낸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일찍이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높이 평가하였으며, 최근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글은 조동호의 삶과 활동을 전체적으로 스케치하는 데에만 그쳤지만,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전개된 그의 활동은 새롭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Abstract
Cho Dongho is a person who continuously launched an anti-Japanese independence movement in Chosun and China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But so far, little research has been done on him. In the 1910s and 20s, he led the formation and activities of various organizations such as Dongjesa and New Korean Youth Party(Shinhan Youth Party) in Shanghai and also worked in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and Provisional Parliament. Even after the mid-1920s, it was also the main player who led to international approval through Comintern by conducting activities of Chosun Communist Party at home and abroad. At the end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was a key player in the so-called ‘Jo Dongho Group(Tuesday Group)’ and Chosun National Foundation Alliance. In the process, he was imprisoned several times. He also spent almost his entire life as a journalist, publishing a number of articles and editorials representing the insights of the times and the interests of Chosun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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