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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璿源殿의 기능과 변천에 관한 연구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Main hall of Seonwonjeon(璿源殿) complex of Joseon Dynasty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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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미술

초록

현재 창덕궁 내에는 두 채의 선원전이 있다. ‘舊璿源殿’이라 불리는 건물은 仁政殿 바로서쪽에 자리잡고 있는데 현재 이 건물에는 현판이 걸려 있지 않으며,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龕室과儀仗이 모두 철거된 채로 남아 있다. 이와 달리 ‘新璿源殿’ 라 불리는 건물은 돈화문에서 직북위치 깊숙한 장소에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는데, ‘璿源殿’이라 쓴 정면에는 현판이 걸려 있고,내부에 어진은 없지만 봉안시설만은 남아 있고, 바닥에도 당시의 鋪陳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21년에 덕수궁 선원전을 헐어 창덕궁 북쪽으로 옮겨와 새로 지은 건물을 선원전, 인정전옆에 있던 원래의 선원전을 ‘元璿源殿’이라고 불렀던 일제강점기의 사정을 감안하면 현재의 명칭은 관리의 편의상 붙여진 데 불과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 경복궁 안에 처음 세워졌던 선원전은 璿源錄, 誥命 등 왕실 관련 자료와함께 어진을 보관하던 건물이었다. 조선후기 창덕궁에 세워진 선원전도 처음에는 조선전기의 경복궁 선원전처럼 왕실 관련 자료와 함께 어진을 櫃中奉安하는 장소였으나, 숙종 사후인 경종-영조대를 거치면서 어진을 펼쳐서 봉안하고 작헌례와 다례 등의 의례를 거행하는 장소로 변경되었다. 그 결과 역대 왕의 사후에 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감실이 지속적으로 增建되면서 哲宗 2년에 이르러 선원전은 감실 6실, 좌우 익실 각1실인 정면 8칸 건물로 확대되었다. 이후 고종 5년(1867)에 경복궁에 선원전이 새롭게 중건되었고, 광무 1년(1897)에 경운궁에감실 7실 규모의 선원전이 창건되었다. 그 결과 광무 1년부터는 세 궁궐에 모두 선원전이 공존하게되었다. 한 궁궐에서 다른 궁궐로 移御할 경우에 대비한 조치였다. 광무 4년(1900)에는 비워 두었던 경운궁 선원전 第一室에 太祖의 어진을 새롭게 봉안하면서 아울러 창덕궁과 경복궁의 두 선원전 동변에 제일실을 증건하여 감실 7실을 갖추었다. 이 해에 경운궁 선원전이 화재로 소실되자, 궁내의 다른 위치로 옮겨 중건하였다. 이 시기의 선원전 증건이나 중건과 관련하여 儀軌가 작성되었으므로, 당시의 건축공사 내용을 상세하게 알 수 있고, 현존 건물과의 비교를 통하여 선원전 건물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선원전의 기능과 변천에 대한 이번 연구를 통하여 선원전 건축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하였지만, 그곳에서 행해진 의례와 건축공간의 활용 문제는 후고로 미루었다

Abstract

enshrining the portraits of the deceased kings of the Joseon Dynasty. Now there are two Seonwonjeon complex, namely Old-Seonwonjeon and New-Seonwonjeon, in Changdeokgung Palace. The main hall of Old-Seonwonjeon was transferred from Gyeongdeokgung Palace and renamed from Gyeongwhadang to Chunwhijeon in A.D. 1656and repaired and renamed to Seonwonjeon in 1695 A.D. Seonwonjeon originaly had a memorial hall with one room, but contained a memorial hall with 7 rooms from the 4th year of Kwangmoo(光武). The main hall of New-Seonwonjeon was transferred from the Deoksugung contained 7 rooms from the 1st year of Kwangmoo and reconstructed with 12 rooms in Changdeokgung Palace in A.D. 1921. In Gyeongbokgung and Geongungung Palace, there also was a Seonwonjeon(璿源殿) complex contained 7 rooms from the 4th year of Kwangmoo, but one was deconstructed and the other was transferred by the Japanese colonial governor-general. This treatise is firstly focusing on the question why and when the main hall consequently extended lengthwise. The main hall of Old-Seonwonjeon was continuously extended lengthwise for the reason that there was a need for the addition of rooms for enshrinment due to the increase of the portraits of the deceased kings. So the total number of rooms continuously extended from one room to 7 rooms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The rite of enshrinment of the portraits was one of the majestic court rites. The ancestor-memorial services were performed in the 6 festives and the birthday of the deceased kings.Second, this study is elucidating the architectural program about the extension of The First Room(第一室) for enshrining the portrait of Emperor Taejo in the 4th year of Kwangmoo(光武) on the basis of Yuigue(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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