碧巖 覺性과 華嚴寺 靈山會掛佛圖
Byeokam Gakseong and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at Hwaeom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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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벽암 각성(1575~1660)은 청허 휴정(1520~1604)의 淸虛系와 함께 조선후기 불교계의 양대계파인 浮休系 성립의 기반을 구축한 승려였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사찰의 중창과 佛事를 통해 위로하면서, 조선후기 불교미술 조성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각성은 1636 년(인조 14)에 화엄사를 중창하고 이어 하동 쌍계사, 완주 송광사 등 대가람을 중창하였으며, 1646 년(인조 24) 이후 화엄사에 주석하면서 1653 년에 화엄사 영산회괘불도 조성을 주도하였다. 화엄사 영산회괘불도는 24 폭의 모시를 이어 만든 가로 731cm, 세로 1009cm 의 거대한 화폭에 靈山齋의 주불인 석가모니의 설법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효종의 차녀 淑安公主(1636~1673)와 남편 洪得箕(1635~1673)를 비롯한 90 여 명의 연화질과 시주질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 화엄사 괘불도의 조성을 즈음하여 각성을 중심으로 한 벽암문도는 보살사 영산회괘불도(1649), 안심사 영산회괘불도(1652), 영수사 영산회괘불도(1653), 비암사 영산회괘불도(1657) 등 영산회괘불도 조성을 주도하였다. 이처럼 1649 년~1657 년 사이의 짧은 기간 안에 충청, 호남지역에서 靈山會라는 동일한 도상의 영산회괘불도가 다수 조성된 것은 靈魂遷度儀禮인 靈山齋가 조선 후기의 최대의 불교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뿐 아니라 관련의식집이 다수 발간되었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각성이 서문을 쓰고 제자 智禪이 편찬한 五種梵音集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벽암문도의 불사는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8, 19 세기 영산회괘불도의 성행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조선후기 영산회괘불도의 성립과 확산에 있어 각성의 역할이 매우 지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Abstract
Paintings of Hwaeomsa temple is a representation of Assembly at the Vulture Peak of Yeongsanjae's main Buddha Shakyamuni, with a width of 731 cm and a length of 1,009 cm, which is made up of 24 ramie cloths for which about 90 peoples along with Hyojong's second eldest daughter Princess Sukan(1636~1673) and her husband Hong Deukgi (1635~1673) supported. On the occasion of the composition of Hwaeomsa temple banner paintings, Byeokam clan led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such as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at Bosalsa temple (1649), Anshimsa temple (1652), Yeongsusa temple (1653), and Biamsa temple (1657). The reason that a plural number of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of the same iconography, Yeongsanhoe, were composed in the Chungcheong and Honam regions in the short period between 1649 and 1657, is that not only did the Yeongsanjae, the ceremony to the dead, become the largest Buddhist ceremony of the late Joseon period, but related ritual collections were published as well. Here Gakseong wrote a preface, and the "Ojongbeomeumjip" compiled by his disciple Jiseon had a great influence. Since then, Buddhist services of Byeokam clan spread throughout the country, leading to the prosperity of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of the 18th and 19th centuries. Therefore, it is said that the role of Gakseong in establishing and spreading Yeongsanhoi Banner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was very gr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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