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8세기 司僕寺 관직 운영의 실제와 참상관의 官路 - 장서각 소장 『司僕寺先生案』 분석을 중심으로 -
Actuality of Operation and the Way into the Government Service of the Central Official of Saboksi in the 17th-18th Century: Focusing on the Analysis of The List of Saboksi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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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시대는 『경국대전』체제로 돌입한 이후 의정부-6조와 그 속아문의 관서체계를 갖추고 관직을 편성하여, 양반관료들이 중앙의 정치와 행정을 장악하는 구조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중앙정치제도와 관서ㆍ관직에 대해서는 다양한 성과가 누적되어 있다. 특히 조선초기 제도사는 중앙행정관서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법제적 차원에서의 정리는 거의 종결상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성과와 달리 참하관에서 당상관에 이르는 중앙관의 官路의 실제에 대해서는 연구가 편중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淸要職’과 같은 주요한 관직에 대한 연구나 문과 등 과거 급제자와 같은 엘리트 코스에 연구가 집중되어 있다. 이들을 제외한 非문과 출신 일반 행정 관료의 官路에 대해서는 연구되지 못했다. 물론, 수십 종에 이르는 관서와 수백 종에 이르는 관직을 일일이 분석하는 작업은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사복시라는 한 관서의 실제 관원들의 관로를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일반 행정 官路 연구를 시작하고자 한다. 특히 사복시는 17~18세기 사복시 관원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존재한 장서각 소장 유일본 『사복시선생안(K2-4706)』을 통해 가능했다. 이러한 사복시 관서 운영을 통해, 17~18세기 중앙관서에서 청요직이 아닌 寺ㆍ監과 같은 관서 참상관의 관로 여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었다. Ⅱ장에서는 『사복시선생안』의 자료적 가치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와의 비교검토를 통해 확인하여 그 자료적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사복시 관직운영의 실제를 확인하였다. 여기서는 선생안을 통해 추출한 정보를 토대로 사복시 관원의 出身과 사복시 관원의 前職과 移職 정보를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사복시 관원 가운데 정3품 당하관인 正과, 그 이하 僉正(종4품)ㆍ判官(종5품)ㆍ主簿(종6품) 등 庶官 사이에 출신과 관로에 있어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사복시의 장관인 正은 99.3%가 文科 출신자였고, 사복시 庶官은 문과 출신이 단 3.1%에 그쳤다. 이어 사복시 관원의 전직을 분석하였는데, 正은 46.3%가 청요직 관서에서 차출된 인원이었다. 사복시 庶官의 전직은 74.7%가 일반 행정아문에서 차출되어 왔고, 청요직 관서에서 차출된 인원은 2.5%에 불과했다. 또한 사복시 관원의 이직을 보면, 正은 무려 87.7%가 청요직 관서로 차출되었고, 사복시 서관은 46.9%가 외직으로 나아갔으며, 일반 행정아문으로 19.7%, 호ㆍ형ㆍ공의 낭관으로 16.6%가 차출되었다. 청요직 관서로 진출한 인원은 단 1.1%만 확인된다. 이처럼, 사복시 正과 庶官은 출신과 전직ㆍ이직, 근무일수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는 관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Ⅳ장에서는 이들 분명한 관직상의 차이가 확인되는 사복시 正과 庶官의 관로 여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동일한 사복시 참상관 내에 正과 庶官 사이에는 관로 여정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서로 침범될 수 없는 완벽한 관로 상의 분화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복시 正은 모두 文科를 통해 입사하여, 청요직만을 두루 거치며 결국에는 당상관까지 무난히 진급하는 관로의 하나에 위치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사복시 정은 이미 태생적으로 청요직 루트를 걷는 인물만이 임용되는, 일종의 청요직 관로에 있던 관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사복시 서관은 사복시 정과는 완전히 다른 관로를 걷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음서로 관로에 나왔고, 참하관으로 參奉ㆍ奉事ㆍ直長을 순차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참상관에 올라와서는 縣監ㆍ郡守 등 외직을 주로 거치거나, 主簿나 호ㆍ형ㆍ공조 낭청, 판관과 첨정 등의 관직에 임용되었다. 이들은 30% 가량이 당상관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는 正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중이었다. 이처럼, 사복시 正과 庶官 사이에는 동일한 참상관으로는 볼 수 없는, 확연한 출신과 관로 상의 분화가 확인되는 것이다. 다만 본 논문은 寺ㆍ監 관서 등 조선시대 전체 관서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아닌 사복시라는 한 관서의 관원 운영을 중심으로 살펴본 성과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관서 내의 관로 분화는 대부분의 관서에 통용되는 부분일 것으로 보인다. 아마 사복시 외의 여타 寺ㆍ監 아문 모두에도 통용되는 관직상의 특성일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러한 조선시대 관로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를 위해서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방대한 조선시대 ‘先生案’의 데이터베이스화와 그 분석을 필요로 한다.
Abstract
In this thesis, through the administration of the Saboksi(司僕寺) office, the purpose is to examine the journey through the government office as a central office in the 17th - 18th century, not a clean worker(淸要職), but a government office like a SI or Gam(寺監). This tried to overcome the limitation that the result of a journey of a conduit is concentrating on a clean worker(淸要職) or graduate from gwageo(文科出身). Fortunately, in the case of Saboksi(司僕寺) office, we can secure a list of jung(正) and chumjung(僉正) and pangwan(判官) and jubu(主簿) who worked at the Saboksi(司僕寺) in the 17th - 18th century through the "The list of Saboksi official(司僕寺先生案)" It was. This material is a very fine Saboksi(司僕寺) office list, which made it possible to understand concretely the actual situation of Saboksi(司僕寺) government administration. In Chapter II, we confirmed the material value of "The list of Saboksi official(司僕寺先生案)" through chronicle, comparison and examination, and it was able to secure its documentary reliability. In Chapter III, we actually confirmed the actuality of government administration at Saboksi(司僕寺). Based on the information extracted through this "The list of Saboksi official(司僕寺先生案)", we examined the officials of Saboksi(司僕寺). 99.3% of the director of the Saboksi(司僕寺) is from the graduate from gwageo(文科出身), and the officials(庶官) of the Saboksi(司僕寺) are only 3.1% from the graduate from gwageo(文科出身). Subsequently, I analyzed the former office and change jobs of the Saboksi(司僕寺), 46.3% of the jung(正) were elected by the officials of the cleanliness office and 87.7% advanced to the officials of the cleanliness workers(淸要職). 74.7% of the general officials(庶官) of the Saboksi(司僕寺) are elected by general administrative gates, only 2.5% of the persons elected by cleanliness workers(淸要職), Only 1.1% of the persons who advanced in the office of the cleanliness workers(淸要職). Chapter IV concretely analyzed the journey of the jung(正) of Saboksi(司僕寺) and the journal of the general officials(庶官) which have confirmed these obvious official job differences. As a result, there was a perfect duct differentiation which is not invaded by each other between birth and ordinary officials from the jung(正) and the general officials(庶官) of the journey of the conduit It could be confirmed. I was able to learn that the jung(正) of Saboksi(司僕寺) joined through the graduate from gwageo(文科出身), and that only the cleanliness workers(淸要職) are finished, and eventually they are located in one of the conduits promoting safely to dangsanggwan(堂上官). Meanwhile, the officials(庶官) of the Saboksi(司僕寺) was completely walking along the other government employ. These are mostly going out to the muneum(門蔭) and go to the government employ in order to serve the service. In this way, there is confirmed a clear origin and differentiation on the duct, which is not seen in the same chamsanggwan(參上官) of the Saboksi(司僕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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