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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末鮮初 정치적 변동과 恩津宋氏의 懷德 정착

The Study on the Political Trend of the Families of the Eunjin-Song Clan throughout the Ending Era of the Goryo Dynasty and the Beginning Era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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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은진송씨는 회덕을 중심으로 성하였던 가문으로, 은진송씨가 회덕에 입향한 시기는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해당한다. 고려 말을 살았던 宋明誼가 회덕황씨黃粹의 사위가 되어 이곳에 온 데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다만 은진송씨가 懷宋(회덕의 송씨)이라고 칭해질 만큼 지역사회의 깊은 연고를 가지게 된 것은 손자인 宋愉가거주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회덕 松村里는 白氏들이 다수 거주해서 배달촌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고려 말기에 은진송씨의 선조인 송유가 이 땅에 거주하기 시작한이래 그 자손들이 번창해서 송촌이란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송명의가 관직에 진출한 것은 1362년 10월에 과거에 합격하면서부터이다. 그는1369년에서 1372년 사이에 신돈의 당여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인척 유탁으로 인해정계에서 밀려나, 처향인 회덕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중앙정부와의 관계를 끊은 것은 아니었다. 이는 그의 아들인 송극기가 진사에 합격하고, 조선에 들어와서 손자인 송유가 무반으로 호분위부사정에 임명된 것에서 알수 있다. 하지만 송유 또한 정계에서 밀려났는데, 그 이유는 외조부인 유준이 태조이성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탓에 태종 이방원과의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았기때문이다. 송유는 신덕왕후 강씨의 종묘 부묘 문제로 인해 회덕으로의 낙향을 결정하였다. 은진송씨의 사례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낙향을 해 지방에 세거하게 된다른 가문의 연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Abstract

Eunjin-Song Clan(恩津宋氏) is a family that was founded mainly in Hoedeok(懷 德), and the time when Eunjin-Song Clan came to Hoedeok is from the end of the 14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15th century. It originated from the fact that the Song, Myung-Ui(宋明誼) who lived in the Late Goryeo, became the son-in-law of Huedeok-Hwang Clan(懷德黃氏). However, Eunjin-Song was called Heosong(懷宋, Song Clan of Hoe-deok) so deeply related to the local community that it was only after his grandson, Song, Yu(宋愉) began to live. Song, Myung-Ui entered the office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October 1362. He was pushed out of the politics in 1369-1372 due to the surrender of a relative who was killed by the party of Shin Don and moved to Hoedeok, his wife‘s hometown. However, that did not mean that it completely ended ties with the central government. This can be seen from the fact that his son, Song, Guek-ki(宋克己), passed the first examination for office, and after entering Joseon Dynasty, his grandson, Song, Yu, was appointed to the busajeong without ban. However, Song, Yu was also pushed out of the politics because her foreign grandfather Yoo, Joon(柳濬)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Taejo Lee, Seong-gye(李 成桂), and his relationship with Taejong Lee, Bang-won(李芳遠) was not friendly. Song Yu decided to return to Hoedeok due to the issue of the Jongmyo Shrine of Queen Shindeok(神德王后). Eunjin-Song Clan's case is believed to be helpful in the study of other families who lived in the region after Living in the countryside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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