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로술(朴魯述)의 외필론(猥筆論)
Park Rosool(朴魯述)'s Theory of Eopil
0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은 광주지역에서 기정진의 직전제자군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 박로술의 생애와 외필론(猥筆論)을 다루고 있다. 박로술은 대략 1902년 후반에서 1903년 하반기 사이에 「「전간재의 「외필변」을 변론함[辨田艮齋猥筆辨]」을 저술했다. 이 저술은 1902년에 나온 전우의 「외필변」을 반론하는 것이고, 「외필변」은 1878년에 저술된 기정진의 「외필」을 비판하는 저술이었다. 외필논쟁의 과정에서 이 글은 1903년 즈음에 노사학파에서 전우를 중심으로 하는 외부의 비판적 논변을 어떻게 반박하고, 「외필」과 기정진의 성리학을 어떻게 옹호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변전간재외필변」의 내용은 21조목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중요한 논점은 「외필」이 반율곡적이라는 비판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초 위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박로술은 노사학파를 대변하는 낱말로서 ‘주리’를 자신의 성리학적 사유의 배경으로 삼았다. 둘째 주리적 관점에서 파악한 율곡 성리학을 매개로 기정진의 계보를 주희에게 연결시킴으로써, 주희-이이-기정진으로 이어지는 성리학적 계보의 학술적 위상에 강조점을 부여했다. 셋째 이에 기초해서 이이의 진술을 유행의 측면에 제한된 것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외필」의 저술 의도임을 강조했다. 달리 말하면 「변외필변」은 기정진의 학술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을 중심에 두고 학술적 논점들을 주변에 배치한 저술이다. 이런 점에서 「변외필변」은 정의림(鄭義林)의 「전우가 쓴 「외필변」를 변론함[辨田愚所著蘆沙先生猥筆辨]」과 함께 호남지역 노사 문인들의 외필론을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저술로서의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Abstract
This article deals with the life of Park Rosool, who represents Ki Jeongjin's disciples in Gwangju, and the theory of eopil猥筆. He wrote "Byuneopilbyun辨猥筆辨" between the late 1902 and the second half of 1903. This is a counterargument to Eopilbyun of Jeon Woo, in 1902. Eopilbyun was a critic of Eopil by Ki Jeongjin, who was written in 1878. Park Rosool's writings in the course of the Eopil-debate are an example of how the Nosa school tried to defend and defend Eopil and Ki Jeongjin's Neo-Confucianism from outside critical arguments centered on Kanjae around 1903. ByunEopilbyun's content was made up of 21 articles, the most important point being to refute Eopil's criticism of his opposition to the Yulgok. On this basis, the key contents are summarized into three. First, Park Ro-sool used the word 'juli主理', which is a word for Nosa school, as the background of his Neo-Confucian thoughts. Second, the genealogy of Ki Jeong-jin was connected to Zhū xī through Yulgok Neo-Confucianism from Juli's point of view. In this way, the academic status of the Neo-Confucian genealogy leading to Zhū xī, Yi yi and Ki jeongjin was emphasized. Third, based on this, he argued that it was Eopi's intention to interpret Yulgok's statement as limited to the aspect of the phenomenon. In the end, ByunEopilbyun is a work that focuses on the aim of enhancing the academic status of Ki Jeongjin and places academic issues around him. Perhaps this is why ByunEopilbyun, which started with criticism of Eopilbyun, ends up claiming the ideological consensus of Zhū xī̄, Yi yi and Ki jeongjin. In this regard, Byun Eopilbyun clearly shows the characteristics of a representative author that can understand the externalities of writers in Honam region.
참고문헌 (26)
- 權命熙, "三畏齋集", ~
- 權鳳熙, "石梧集", ~
- 金魯洙, "扶闢錄", 서울대 규장학. 고1360-50, ~ (1909)
- 奇宇萬, "송사집",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vol.346, ~
- 奇宇承, "普山先生文集 1", 한국역대 문집총서 vol.515, ~
- 奇正鎭, "蘆沙集",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vol.310, ~
- 李最善, "石田集", ~
- 朴魯述, "石陰遺稿" (1989), 전라남도⋅장성군
- 裵錫冕, "日新齋先生淵源錄", 국립중앙도서관, 古2513-187, ~ (1967)
- 宋秉璿, "淵齋集",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vol.330, ~
- 申得求, "農山集",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속 vol.146, ~
- 吳駿善, "後石遺稿", ~
- 田愚, "艮齋集", 표점영인 한국문집총간 vol.333∼334, ~
- 鄭時林, "月波集", 국립중앙도서관, 古3648-70-207, ~
- 鄭義林, "日新齋集", ~
- 鄭載圭, "老栢軒集", ~
- 趙姓家, "月皐先生文集",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古3648-72-103-6, ~
- 현상윤, "조선유학사" (1982), 현암사
- 김낙진, "奇正鎭과 田愚의 성리학적 쟁점과 鄭載圭의 성리설", 南冥學硏究, (29), pp.77~112 (2010), 경남문화연구원
- 김봉곤, "노사학파의 형성과 활동", 박사, 역사, pp.2007
- 박학래, "蘆沙學派의 형성과 蘆沙學의 계승", 동양고전연구, (80), pp.451~491 (2020), 동양고전학회
- 안진오, "奇蘆沙理哲學에 관한 硏究-理一分殊의 哲學體系를 中心으로-」", 박사, pp.1988
- 이상익, "奇正鎭의 「猥筆」과 이에 대한 田愚와 鄭載圭의 논변", 퇴계학논총, (35), pp.77~113 (2020), 사단법인 퇴계학부산연구원[DOI]
- 이향준, "「외필(猥筆)」, 1902-외필논쟁(猥筆論爭)의 시작-", 범한철학, 100(1), pp.91~126 (2021), 범한철학회[DOI]
- 이향준, "「외필(猥筆)」의 기원(起源)", 유학연구, 51, pp.129~155 (2020), 유학연구소[DOI]
- 이향준, "「외필(猥筆)」의 외침 ―기사(騎士)는 죽었는가?―", 유학연구, 54, pp.213~242 (2021), 유학연구소[D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