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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의 서원 관련 언행에 대한 일고찰

A Study on Myunam Choi Ik-Hyun's Words and Actions about Se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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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구한말의 우국지사로, 1906년에 항일의병운동을 일으켰다가 일제에 붙잡힌 뒤 대마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숨진 면암 최익현의 서원 관련 언행을 고찰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에서는 그의 서원 관련 언행을 크게 세 가지의 항목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 먼저 ‘교육 기관’으로서의 언행과 관련해, 그는 서원의 기능은 본래 제향이 아닌 교육이기에 이를 담당하는 서원의 숫자는 많아야 한다고 여겼고, 서원의 훼철은 왕실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으며, 서원을 대대적으로 훼철함으로써 도덕과 절의가 되살아날 수 있는 싹을 없애버리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 다음으로 ‘반(反)개화의 의지 표출 수단’으로서의 언행과 관련해, 면암은 그 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외세의 영향력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던 교회에 대응할 수 있는 기구로 서원을 규정하였고, 의병 봉기를 통해 척화와 항일의 의지를 몸소 표출할 경우에도 서원을 매개체로 설정하였다. ⓒ 마지막으로 ‘정체성 확인의 통로’로서의 언행과 관련해, 그는 도(道)의 계통이 조선과 연결되었음을 드러내거나 의리 정신⋅국가를 위한 희생 등을 강조할 때도 서원에서 하였으며, 선조인 고운 최치원과 연관된 서원과 사적들을 자주 방문하기도 하고 잘 보수, 유지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적이고 가계적인 정체성 역시 서원을 통해 다지고 강화했다. 이상의 내용에 더해 본 연구에서는 후속 과제를 두 가지 제안하였는데, 하나는 면암이 속한 화서학맥의 서원 관련 언행 및 나아가 서원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삶과 사상을 현대의 상황에 알맞도록 재해석하여 교육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words and actions about seowon of Myunam Choi Ik-Hyun, a patriot in the late Joseon Dynasty who raised a righteous army against Japan in 1906 and was exiled to Daemado Island and died there. In conclusion, in this study, his words and actions about seowon were largely classified into three items. ⓐ First of all, regarding the seowon as an ‘educational institution’, he thought that the function of seowon was originally education, and argued that eliminating seowon would have a bad effect on the royal family, and said that it was not desirable to eliminate clues that morality could be revived. ⓑ Subsequently, regarding the seowon as a ‘means of expressing the will to oppose enlightenment’, Myunam defined seowon as an organization that could face the rapidly increasing number of churches, and set seowon as a medium even when directly expressing his willingness to resist Japan through a righteous army uprising. ⓒ Finally, regarding the seowon as a ‘passway to confirm identity’, he conducted it in seowon when revealing that the lineage of the Do(道) was connected to Joseon or emphasizing sacrifice for the nation, and strengthened his academic and family identity by frequently visiting the seowon and historical sites related to his ancestor, Goun Choi Chi-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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